‘자연인’ 문재인 두 가지 역할론

떠난지 얼마나 됐다고…대북 특사? 선거 등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잊혀진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대답했다. 당시 언론과 평론가 등은 소박한 문 전 대통령의 성품이 드러난 발언이라며 임기 후에 꼭 그렇게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 모양이다. 정치계 인사들은 아직 문 전 대통령을 잊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야권, 여권을 막론하고 그의 행보에 대해 정계는 이런저런 예측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역할론이 급부상한 시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다가올 쯤이었다. 문 전 대통령 측의 고위 관계자는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문 몇 주 전, 바이든 측이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측이 현직 대통령과 만남을 한 뒤, 전직인 문 전 대통령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전례 없는
전직 만남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부됐던 ‘바이든·문재인 회동설’은 진보 스피커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됐다.

지난달 29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진행자 김어준씨는 “현직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을 따로 만난다는 것은 한 번도 없던 일”이라며 “우리나라에서만 없던 일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방문하는데 전직 대통령을 따로 만나겠다고 요청하는 일은 이례적인 일”이라 발언했다. 

이런저런 소문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대중은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발언으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됐다.


문재인정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했던 윤 의원은 지난 19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바이든 대통령이 보자고 연락 온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며 “분명한 것은 문 전 대통령은 가만히 계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둘의 만남이 가시화되자 정치계는 분주해졌다. 실제로 둘이 만나게 되는 건지, 만나게 된다면 어떤 목적으로 만나는 건지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난무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단지 “친분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였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보수진영에서는 ‘말도 안 되는 낭설’이라는 논평을 잇따라 내보냈다.

결국 ‘바이든-문재인 회동’은 ‘10분간의 전화 통화’로 대체됐고, 그동안 떠돌던 해석들과 서로를 향한 날선 논평들은 잠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엔 10분간 전화 통화에서의 주고받은 내용에 관심이 집중됐다. 회동설이 전화 대담으로 축소됐지만 ‘전화로라도’ 바이든 미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겠냐는 해석이 돌았기 때문이다.

전화 통화에 발맞춰 당초 제기됐던 ‘문재인 대북 특사설’이 힘을 받았다. 사실, 둘의 회동설이 떠돌 때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특사 권유’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무산되기 전까지 정계 관계자들은 ‘바이든이 직접 만나려는 목적은 북한과의 연결 라인이 견고한 문 전 대통령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발단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의 제안이었다.


태 의원은 지난 12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특사에 문재인 대통령도 고려해야 한다”며 “김정은과 제일 많이 만난 대통령”이란 표현을 썼다. 이에 권 장관은 “충분히 검토해볼만하다”고 화답하며 “(미국과)사전에 이미 교감이 있었다”고 발언해 주목을 받았다.

극에 달한 북 도발…주 1회꼴 발사
바이든-문재인 전화통화 내용 주목

이들의 청문회를 통해 ‘문재인 대북 특사설’은 처음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 전 대통령 측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남을 주장하니 ‘대북 특사설’은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직 대통령의 대북 특사’는 매우 어색한 그림이었다.

그간 전임 대통령이 대북 특사를 간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뒤, 북한과 본격적인 대화 물꼬를 튼 한국정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며 남북 간의 관계는 이어졌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유일하게 북한 지도자와 세 번 만나고 북미 정상 화담을 이끌어내는 등 한때 북한과의 관계를 가장 많이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는 모두 현직에 있을 때 이야기다.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북한과의 관계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문 전 대통령도 아직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여기서 주목되는 게 미국 전직 대통령들의 과거 행보다. 미국은 여러 차례 전직 대통령을 북한에 보낸 전례가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갈등이 심각해질 때마다 북한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인사들을 북한으로 보내 대화로 갈등을 봉합하려 애썼다.

다만 미국의 전임 대통령이 대북 특사로 갈 때는 항상 북한의 ‘호감’과 ‘전례 없는 갈등 상황’이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그 첫 번째 주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카터 전 미 대통령은 북한이 좋아하는 미국 대통령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1976년 대선 선거 유세 때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정부에 유화적이지 않았던 카터 대통령은 군비 증강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들며 한국의 자주국방을 주장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난 1979년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내 개인적인 바람은 긴급조치 9호를 철회하고 재소자들을 가능한 많이 석방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국민총생산(GNP)의 6%를 국방비에 쓰고 있는 반면, 북한은 GNP의 20%를 국방비에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북한이 가졌던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호감은 퇴임 후에도 이어졌다. 클린턴 행정부가 카터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파견한 이유다. 

미국처럼
한국도?


1994년, 북한은 꽁꽁 숨기고 있던 핵개발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 세계가 북한 핵개발에 대한 의심을 품을 때마다 북한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며 수차례 거짓말을 해왔다. 북한은 강요받지도 않은 핵개발 과정을 스스로 공개했고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목적이라 둘러대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랬던 북한이 결국 핵금지확산조약기구를 탈퇴하며 핵개발을 선언하자, 클린턴정부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군사 움직임을 할 수 있다’고 북한 측에 계속해서 경고했다. 북한의 반응이 없자 말뿐이었던 경고는 행동으로 옮겨졌다.

미국은 동해에 항공모함 5척을 보내고, 한국에 군비를 증강하는 등 실제 군사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북한은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특사 교환 실무회담에서 “전쟁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 맞불을 놨다. 양국이 물러서지 않는 태도를 취하며 ‘한반도 전쟁 위기설’은 걷잡을 수 없는 형태가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본인의 자서전에서 “미국정부의 허가와 상관없이 북한에 갈 것을 결심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 밝혔다. 실제로 클린턴 대통령도 본인의 자서전에서 “이때 카터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전쟁 준비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에 간 카터 전 대통령은 유엔에서 추진하고 있던 대북 제재를 폐지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켰다. 최초로 북한에 간 전임 미국 대통령이 이뤄낸 유일무이한 성과였다. 그러나 후에 북한이 끝까지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며 카터 전 대통령은 두 차례 더 북한을 방문해야 했다. 

이후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은 다름 아닌 빌 클린턴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낸 장본인이다.


이때도 북한의 ‘호감’과 ‘전례 없는 갈등’이란 조건이 충족됐다. 북한은 2009년 3월 북·중 접경지대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 중이던 미국 방송국 소속 로라 링과 유나 리 기자를 체포해 억류시켰다. 두 기자는 각각 중국계,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자국민의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는 미국정부는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를 통해 둘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둘의 자존심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자국의 ‘폐쇄성’을 중요시하는 북한과 자국민의 ‘생명권’을 중요시하는 미국 사이에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즉각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며 이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렸고, 미국정부는 지속해서 북한 정부와 협상에 임했다.

억류 3개월이 지난 6월경, 북한정부는 두 기자에게 노동 교화형 12년을 선고하며 미국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협상에 진정이 없던 중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백신 들고
핵 교감?

7월 중순 무렵 억류된 기자들이 가족들과의 통화에서 “북한 당국 측이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을 특사로 원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카터 전 대통령 특사 때 만들어놨던 인연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클린턴 전 대통령은 양국의 풀 수 없던 난제를 직접 해결하러 북한에 갔다.

평양에 약 21시간 동안 체류한 것으로 알려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정상 방문에 버금갈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면담했고, 각처 관료와 다섯 차례 면담 및 만찬을 이어갔다.

그의 노력 덕분에 두 기자는 억류된 지 약 140일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 전 대통령은 대북 특사의 조건을 충족할까. 우선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은 충족된다. 북한은 최근 뒤늦은 코로나 사태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에 면역이 없는 상태에서 바이러스의 침투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립된’ 북한에 코로나 백신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폐쇄로만 일관하던 북한은 무방비 상태에서 방에 구멍이 뚫렸고, 코로나는 빠르게 북한 내부에 퍼지고 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선 매일 10만명 이상의 코로나 환자가 나오고 있다. 이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누적 환자는 수백만명에 그친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이 수치를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누적 환자가 1000만명은 될 것이라 가정해도 무방하다”며 “그동안 북한의 통계는 정확했던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가 주장한 최대 1000만명은 북한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전문가는 “김정은이 실권을 쥐고 난 후 ‘전례 없던 혼돈’이 온 것”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인구가 줄고, 사회 전반에 혼돈이 오면 김정은 체제의 위기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움직임을 감안한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남북 관계의 정치, 군사적 고려 없이 언제든 열어 놓겠다”며 “북한이 호응한다면 코로나 백신을 포함해 의약품, 의료기구, 보건 인력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선거 전후 당에 간접적인 영향?
정치권 인사들 발길 끊이지 않아

북한과의 외교에서 유화적이지 않을 것을 선언한 윤 대통령이지만, 북한의 코로나 문제에 대해선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 측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히려 윤석열정부를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북한은 “희대의 부정부패 왕초이자 동족 대결광인 이명박의 사환꾼들, 이런 자들이 국민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5년 동안 주인 행세를 하겠다니 참으로 ‘망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고 조롱했다. 

전문가들은 문 전 대통령이 만일 특사로 간다면 코로나 ‘백신 전달이 우선 목적일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북한의 체제 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는 코로나 사태를 봉합하려면 특사가 필요하고 그 적임자가 문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문 전 대통령의 역할론이 여권에서 맴돌자 이번에는 야권에서 선거 틍판론이 제기됐다. 지난 대선 때 이낙연캠프를 도왔던 민주당 의원 측의 한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이 간접적으로라도 당에 도움 될만한 행보를 보였으면 한다”며 “현재 민주당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사람은 문 전 대통령뿐”이라 말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 이재명 인천 계양을 후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민주당에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같이 말했다.

당초 민주당의 텃밭이라 불리던 인천 지역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 후보는 비교적 약세라 평가받는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와 지지율 격차를 벌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에 위기가 찾아오며 계파 갈등이 다시금 불거졌다.

이 후보가 직접 전화해 데려왔다고 알려진 박지현 공동선대위원장도 지난 24일 독단적인 기자회견으로 민주당의 분열을 또 한 번 일으킨 바 있다. 그의 이날 호소에는 지난 민주당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성찰을 담았다. 이 호소를 계기로 계파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계파 간의 평가가 엇갈린 탓이다.

“외부 비대위원장이 마땅히 할 만한 발언”이라는 이재명계 측의 평가와 “해당 행위에 버금가는 기행”이라는 이낙연계의 평가가 나왔다. 

계파 갈등
해결사로?

현재 문 전 대통령의 등판론은 일부 극성 ‘이낙연계’의 주장에 불과하지만, 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친문(친 문재인)과 친노(친 노무현)와 더불어 친명(친 이재명)계 까지 한 번에 품을 수 있는 인사는 현재 문 전 대통령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라 말했다. 이어 “당의 분열이 계속된다면 낭설로 치부되는 주장이 현실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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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