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다섯 정부 중용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높다, 18억 문턱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윤석열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앞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정부에서 모두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거친 데 이은 다섯번째 ‘중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역대 3번째로 진보·보수정권에서 모두 총리에 오른 인물이 된다. 그 비결은 40년간 쌓아온 입지전적인 관직 경력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1949년 6월18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6남3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전에는 서울 출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1990년대까지 만연했던 호남 차별 탓에 한때 본적을 숨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름받은 
백전노장

호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한 후보자는 서울 소재의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1967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하면서 이른바 ‘KS 라인(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에 합류했다.

한 후보자는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첫 발령지는 관세청이었다.

1977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79년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했다. 상공부로 근무하던 1982년 다시 유학길에 올라 1984년 같은 곳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취득 뒤에도 공직생활은 이어졌다. 상공부 중소기업국장, 산업정책국장, 전자정보국장 등을 역임했다.

1993년 3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 잠시 대통령비서실 산업담당비서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94년 상공부로 복귀해 기획관리실장에 이어 통상무역실장을 맡았다. 이때 한 후보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추진, 대일(對日) 무역 규제 해제 등의 굵직한 업무를 처리했다.

1996년 12월, 48세의 나이로 차관 승진에 성공한다. 1997년 3월까지 특허청장을 지낸 뒤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임 중 IMF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이를 수습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김대중정부 들어서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이때 한미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 FTA)을 최초로 추진했다. 역임 중 산업자원부 장관 하마평에 여러 차례 올랐지만, 실제 지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01년 주 OECD 대한민국 대표부 이사를 지내고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으로 연이어 임명됐다. 하지만 임명 6달 만인 2002년 7월, 중국과의 ‘마늘 분쟁’ 관련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한 후보자는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뒤로한 채 1년간 숨을 골랐다. 이 기간 국내 유명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 8개월가량 활동하기도 했다.

김영삼부터 이명박까지 연속 러브콜
확정되면 진보·보수 오간 3번째 총리


그는 노무현정부(이하 참여정부) 들어 공직사회에 복귀했다. 2003년 7월 산업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2004년 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약 1년간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했다.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관련 업무를 지원하며 정무‧안보 경험을 쌓았다. 실장 재임 기간 중 노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기도 했다.

2005년 3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당시 “꽤 이례적인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재무관료들이 주로 배치되던 자리에 통상산업관료의 정도를 걸어온 한 후보자가 임명됐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재임 당시 여러 경제정책들을 손봤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금산법(금융-산업자본 분리)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2006년 3월에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절 골프 사건’으로 사퇴하면서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임했다. 다음 달인 4월 한명숙 국무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국정 공백을 최소화했다.

부총리 퇴임 직후인 같은 해 8월에는 한미FTA 체결의 ‘마무리 투수’로 나섰다.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협정 체결 전 막판 협상을 이끌었다.

참여정부 임기 말, 마지막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붕괴되면서 사실상 여소야대 형국이 펼쳐진 상황에서도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해 인준받았다.

총리 재임 기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경험했다. 당시 북한 내각 총리 김영일과 남북총리회담을 갖기도 했다. 한 후보자는 임기 말 총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참여정부 초기 총리였던 고건 전 총리처럼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 돌아온 보수정권에서도 ‘실무형 인사’라는 평가 속에 어김없이 중용됐다. 이명박정부는 한 후보자가 한미FTA 협상을 주도했던 이력을 높게 사면서 그를 주미대사로 임명했다.

그는 한미FTA 비준 과정에서 미국의 여러 지방정부와 의회를 돌며 이들을 설득했다. ‘한미FTA 전도사’라는 별명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40년 공직
실무형 인사

한 후보자는 2012년 2월 주미대사를 퇴임하면서 4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지었다. 그 뒤에는 한국무역협회 회장,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등을 거치며 공직 바깥에서 활동해왔다.

그랬던 그가 순식간에 국내 정치의 한복판으로 귀환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 후보자를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표하면서다.


윤 당선인은 경제 및 대미 전문가, 국민 통합 등 여러 요소를 두루 고려해 한 전 총리를 지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정치신인인 윤 당선인에게 부족한 경륜과 국정운영 경험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점 역시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는 대내외적 엄중한 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기틀을 닦아야 하고, 경제와 안보가 하나가 된 ‘경제안보 시대’를 철저히 대비해 나가야 한다”며 “한 후보자는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과제를 수행해나갈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총리 지명 배경을 전했다.

한 후보자는 윤 당선인으로부터 후보자로 지명받은 직후 소감을 남겼다.

한 후보자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대내외적 경제와 지정학적 여건이 매우 엄중한 때에 국무총리로 지명되는 큰 짐을 지게 돼 영광스러우면서도 매우 무겁고 큰 책임을 느낀다”며 “새로이 지명되는 총리로서 윤 대통령을 모시고 행정부가 중심이 되는 정책을 꾸준히 만들고, 치열한 토론과 소통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정책들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협치와 통합이 굉장히 중요한 정책의 요소가 될 것”이라며 “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윤 당선인과 행정부, 입법부, 국민과 협조하며 좋은 결과를 내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후보자는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경제와 안보가 하나로 뭉쳐서 굴러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세계화·개방·시장경제를 다소 변경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며 ‘국익외교와 국방 자강력’ ‘재정건전성’ ‘국제수지 흑자 유지’ ‘생산력 높은 국가 유지’ 등을 국가 중장기적 운영을 위한 4대 과제로 꼽았다.


경륜 충만
통합 인사

한편 정치권에서는 한 후보자에 대한 환영과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우선 한 후보자는 올해 73세로 비교적 고령이다. 2012년 주미대사로 일한 이후 10년 넘게 공직에 나서지 않은 점 역시 함께 지적됐다. 고령과 경력 단절이 업무 능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는 “계속 공부해오는 스타일이라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리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며 “오래 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과 위기대응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측면이 있고, 건강도 지금 너무 좋다”고 답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저축은행 책임론·론스타 관여 의혹 등도 발목을 잡는다. 

몇몇 시민단체는 한 후보자가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던 시점에 기업 대출 한도를 무제한으로 풀어주도록 관련 법이 개정된 게 저축은행 부실화의 시발점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이 2011년 1조원이 넘는 피해를 가져온 ‘저축은행 사태’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한 후보자가 2002년경 8개월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재직한 이력도 논란이 됐다.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한 후보자가 김앤장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보수가 론스타 외환은행 불법매각 은폐에 대한 대가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김앤장은 론스타의 국내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한 바 있다.

한 후보자는 지난 4일 “론스타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정부의 정책 집행자로서 관여한 부분은 있지만, 김앤장이라는 사적인 직장에서 관여한 바는 전혀 없다. 저는 그 일에 관여된 적이 없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반면 한 후보자는 국민 분열·여소야대라는 난국 속 험난한 검증 과정을 무난히 통과할 인사라는 기대 역시 받고 있다.

호남·참여정부 출신…여소야대 정국 해법? 
저축은행 책임·론스타 의혹 소명이 관건 

실제로 그는 공격받을 지점이 상대적으로 적다.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주요 낙마 사유로 꼽히는 군 문제, 자녀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앞서 참여정부 부총리 청문회 때 육군 병장 만기전역으로 병역의 의무를 다한 사실이 알려졌다. 슬하에 자녀도 없다. 또한 출신에 따라 ‘통합인사’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도 호남 출신이자 참여정부 총리 출신인 한 후보자를 반대할만한 명분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한 후보자가 정치색이 옅은, 실무 중심의 관료 출신이라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민주당이 이를 부정하며 검증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르는 탓에, 청문회 분위기는 아직 ‘안갯속’이다. 민주당은 각종 의혹들을 열거하며 송곳 검증을 예고하고 나섰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우리 정부 때도 뭘 했다, 호남이다 이걸 감안해서 한 것 같긴 하지만 염려되는 것은 있다”며 “국민 통합이 중요한데 호남 출신이기 때문에 국민 통합이(자연히) 될 것이라는 건 아주 1차원적인 접근”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이수진 원내대변인 역시 “총리직을 수행했던 15년 전과 달리 대한민국은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중립, 신냉전 국제질서, 고령화와 청년 불평등 문제 등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문제들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앞서 제기된 저축은행 사태 책임론, 론스타 관여 의혹에 이어 ‘김앤장 18억 고문료 의혹’을 짚고 나섰다. 지난 4일 SBS 보도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2017년부터 4년4개월 동안 김앤장으로부터 18억원이 넘는 고문료를 받아왔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법률가가 아닌 고위 관료가 김앤장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국민이 궁금해한다”며 “(한 후보자가)김앤장으로부터 받은 월 3500만원이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 도덕과 양심의 기준에 맞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와 관련해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현재 사퇴)은 “일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저희가 인지했던 것 같다”면서도 “앞으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총리 후보자가 이 부분에 대해 국민들게 설명을 드릴 것으로 안다”는 해명을 내놨다.

한 후보자 역시 “최선을 다해 진정성 있게 청문회에 대응하겠다”며 “결과는 진정성 있게 최선의 노력을 한 결과로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각종 의혹
해명 어떻게?

한편 한 후보자가 이번에도 국무총리에 오를 경우, 이는 진보-보수정권을 아우르며 국무총리를 지낸 역대 3번째 사례가 된다. 한 후보자 이전에는 박정희정부와 김대중정부에서 국무총리직을 역임한 김종필 총재와 김영삼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총리직을 수행한 고건 전 총리가 있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시장 개방론자’ 한덕수 뚝심 일화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대표적인 시장 개방론자로 알려졌다. 시장을 개방하고 다른 국가들과 경쟁해야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경제관료로 일할 때는 목소리를 높인 때가 거의 없지만, 통상 분야에서는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해왔다.

1998년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장관급 관료 중 최초로 관용차를 수입차로 바꾼 일화는 유명하다. 수입차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시장 개방 노력을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그는 수입자동차협회에 차종을 추천받아 스웨덴 사브 차량으로 관용차를 바꿨다.

스크린쿼터(정해진 기간 동안 한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게 하는 제도) 폐지 주장도 눈길을 모았다. 그는 같은 해 7월 “영화업계 위기 극복을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투자협정 협상 때 미국 정부가 스크린쿼터제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국내 영화계의 거센 반발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부총리 시절인 2006년, 그는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줄이는 일에 앞장섰다.

아울러 부총리 때 쌀 시장 개방, 추곡수매제(정부가 농민들에게 일정한 가격으로 쌀을 사들이는 제도) 폐지 등을 추진하다가 ‘볍씨 세례’를 당하기도 했다.

2005년 10월 음성군의 한 농촌 마을을 방문했다가 해당 정책들을 반대하는 농민들이 한 후보자와의 대화를 요구하며 관용차에 볍씨를 뿌리고, 앞에 드러눕는 등 격하게 항의한 것이다.

하지만 한 후보자는 이 같은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정책들을 추진했고, 결국 추곡수매제는 2005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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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