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리뷰> 이별의 교과서 ‘환승연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차태현 분)는 그녀(전지현 분)의 새 소개팅 남성(임호 분)에게 그녀와 만날 때의 10가지 수칙을 알려준다. 칭찬을 좋아하며, 술을 석 잔 이상 마시게 하면 안 되고, 검도와 스쿼시는 배워두라는 등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른바 전 애인이었던 그녀가 새로운 삶을 살 때 더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응원이 담겨 있다. 이에 감동받은 그녀는 견우를 만나기 위해 달려간다. <엽기적인 그녀>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대목이다. 

영화이기에 가능해 보이는 이 설정이 현실에서 그려진다면 어떨까. 새롭게 생긴 연인의 전 애인으로부터 후기를 듣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또 내가 생각하는 나와 한때 사랑을 나눴던 전 애인이 바라보는 나는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 수 있다면, 그 역시 흥미로운 설정이다.

tvN <환승연애>는 이른바 <엽기적인 그녀>의 현실판이다. 네 쌍의 헤어진 커플이 한 집에 모여 생활하면서 과거의 이별을 정리하거나 혹은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다.

전 연인과 한 집에서 지내면서 전 연인의 새로운 사랑을 지켜보고, 혹은 전 연인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을 관찰한다. 인의예지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보기 힘들었던 발칙한 발상이다. 방영 전부터 ‘마라 맛’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너무 자극적인 콘텐츠 아닐까라는 우려를 샀다. 

6화까지 진행된 <환승연애>는 기존의 우려를 깬다. 오히려 이별의 교과서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진정성이 있다.


대부분 연인이 헤어지게 되면 연락을 끊고 최대한 동석을 피하며 살아간다. 지인의 결혼식 같은 곳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마음과 정신은 금세 혼란스러워진 경험도 있을 테다. 아무리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사랑했던 감정이 깊었을수록 혼란은 심화한다.

하지만 출연진은 예상되는 혼란을 감수하고서 <환승연애>에 나왔다. 쉽게 출연하기 힘든 방송에 저마다의 이유로 나온 만큼 다양한 리액션이 그려진다. 그 가운데 <환승연애>에서 눈에 띄는 건 이별을 받아들이는 태도 차이다. 

누군가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억지로 전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했고, 누군가는 아직 이별의 상황과 마주하지 않고 있다가 옛 연인을 보고서야 이별을 실감한다. 뒤늦게 찾아온 이별의 아픔에 나오는 건 눈물뿐이다. 

옛 연인에게 미련이 남아있는 줄 알았는데, 정작 다시 만나 보니 마음이 굳어져 버렸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하고, 이미 끝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미련이 있다는 걸 마주하기도 한다. “여길 내가 왜 나왔을까?”라며 구긴 인상으로 하루를 보내는 건 이별의 아픔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힘든 중에도 꿋꿋하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일렁이는 마음을 다 잡으려 비가 오는대도 굳이 혼자 산책을 나간다. 힘겨운 상황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극복하려는 모습이 기특하게도 여겨진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으로밖에 경험할 수 없는 이별을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환승연애>의 특별함이다. 감정의 진폭이 크든 작든, 물리적 시간이 길든 짧았든,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픈 현실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환승연애>의 이진주 PD는 “출연진의 이별 과정이 이렇게 드러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평가를 받는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기획됐다”며 “출연해주신 분들이 진심으로 촬영에 임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반부는 주로 이별에 대한 정리의 시간을 갖는다. 8명의 출연자는 밤이 되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다. 며칠째 한 표도 받지 못한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전 애인이 문자를 보내지 않은 것에 기분이 나쁘면서, 새로운 사람과 잘 지내보려는 이중적인 마음도 생긴다. 

제작진은 출연자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의 전 연인과의 Q&A 시간도 갖게 했다. 마음에 드는 이성의 전 연인에게 평가를 부탁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보라고 해도 ‘듣고 싶다’는 마음이 선뜻 들지는 않는다. 이 설정은 흥미로움과 거부감 어딘가에 놓여 있는 듯해 집중하게 된다. 

이 PD는 “대다수 출연자가 흥미로워했다. 정작 Q&A 시간을 갖고 나서는 불편했다고 마음을 내비친 출연자도 있었다. 남녀불문하고 전 연인들이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더라. 그 자체도 개인적으로는 솔직해서 좋았다”며 “내가 생각하는 나와 전 연인이 생각하는 나의 차이를 알아보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금씩 새로운 인연과 데이트를 하기 시작한 <환승연애>는 본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간다. 첫눈에 마음에 든 이성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사람도 있고, 과거의 미련으로 인해 여전히 소극적인 누군가도 있다. 특별한 생각이 없었는데 데이트 후 급격하게 마음이 커져버린 경우도 있다. 헤어진 연인을 만나러 왔는데, 정작 그이는 다른 사람에게만 눈길을 준다. 

실타래처럼 얽힌 관계의 끝은 과연 어디일지 궁금케 한다. 

<환승연애>의 매력은 고정 패널도 한몫한다. 이용진, 유라, 쌈디, 김예원과 게스트로 구성된 패널은 하나 같이 연애 고수다. 타인의 상황에 절묘하게 공감하면서도, 다소 파격적인 행동은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러면서 수면에 있는 출연진의 무의식조차 포착하기도 한다. 

굳이 텐션을 높이기 위해 오버스럽게 행동하지 않고, 억지로 출연진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진지하고 신중하게 존중할 뿐이다. 패널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존중을 아는 제작진의 편집이 이러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PD는 “사실 정말 많이 준비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이 프로그램에 나와 상처 받지 않길 바라고 있다. 해피엔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라도 성장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로 편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 전 파격적인 설정으로 우려를 산 <환승연애>는 이별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하다. 흔히 실화보다 더 강렬한 상상은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을 <환승연애>가 증명한다. 아직 초반부인 <환승연애>의 끝은 어디가 될까. 명확하게 기준을 세우기 어렵겠지만, 모두에게 해피엔딩이 되길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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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