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연애에 빠진 요즘 예능프로그램 리얼 후기

대놓고 바람 피고 내놓고 음주방송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주의가 국내 미디어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나 동물 학대, 지나친 선정성, 범죄의 묘사, 술·담배 등의 장면에는 어김없이 냉혹한 여론이 형성된다. 여러 제재가 있음에도, 국내 방송계는 여전히 금기에 도전 중이다. 특히 술을 소재로 한 예능이 범람하고 있으며, 연애 예능도 이전에는 없었던 독한 맛으로 승부하고 있다. 

애주가로 불리는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예능인 신동엽이 녹화 끝나고 스태프들과 늘 한 잔씩 기울이는 애주가로 정평이 나 있으며, tvN <신서유기>의 규현은 술을 좋아해 ‘조정뱅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외에도 많은 스타가 술을 즐기는 것을 편히 말했다. 

금기와 
대리만족

1년에 36억병의 소주를 먹는 국내 정서에 술을 즐기는 라이프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편안함과 익숙함이 무기인 예능인들에게 술로 인한 큰 문제가 없었다면 대체로 친숙한 이미지를 준다. 

tvN <인생술집>은 이러한 대중의 코드를 읽어내며 방송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는 강수를 뒀다. 연예게 대표 주당인 신동엽을 MC를 전면에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술을 통해 연예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는 호평과 동시에 음주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2018년 12월17일 <인생술집>에 대해 법정 제재인 ‘주의’를 줬다. 방심위는 당시 “출연자 간의 대화보다 음주 장면을 지나치게 부각해 자칫 시청자들에게 음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거나 음주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비록 비판 의견이 있긴 했으나 2016년 12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장수한 프로그램이다. <인생술집>의 안정적인 성공 이후 술 예능이 생겼다. 채널 십오야의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는 규현이 지인들과 술 한 잔하는 장면을 관찰 예능으로 공개했다. 

규현은 막걸리 소주, 옛날 양주, 전통주 등 술을 가리지 않고 마셨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고, 새로운 게임을 배우기도 했으며, 각종 술과 어울리는 안주를 찾기도 했다. 유튜브 조회수 200~300만을 기록하는 등 웬만한 예능프로그램보다 더 강력한 화력을 보였다. 

규현은 이를 통해 단독 MC로서도 손색없는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서유기>에서 친분을 맺은 뒤 출연진의 특성을 개발하는 데 특출한 능력을 가진 나영석 사단의 재기가 빛을 발했다는 평이다. 

술 예능이 호평을 받자 갑작스럽게 대다수 채널에서 술 예능을 론칭한다. 술을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대거 나왔다. 술을 소재로 저마다 조금씩 내용을 비튼 방식으로 시청자들과 만날 준비를 한다. 

먼저 지난 9일 KBS 웹 예능 <조세호의 와인바>가 술 예능의 시동을 걸었다. 조세호가 ‘조믈리에’라는 부캐로 바(Bar)를 차린다는 콘셉트의 예능이다. 와인이나 샴페인 등에는 문외한인 조세호가 실제로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붙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지인 혹은 게스트와 함께 즐기는 방송이다.

먹고 취하고 즐기는 취중 프로    
지상파·OTT 가리지 않고 제작

외국 술을 알고 싶지만 정확하게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첫 화 게스트로는 차태현이 등장했다. 아직까지는 1회까지밖에 나오지 않아 프로그램의 정확한 기획 의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채널 S의 <신과 함께>는 지난 16일 시즌2를 맞이했다. 신동엽을 비롯해 성시경, 이용진, 박선영, 시우민 등 연예계 애주가들이 특별한 날 어떤 술과 안주를 먹을지 고민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좋은 조합의 안주를 추천해주는 포맷이다.

시즌1은 주문자들의 사연에 맞춘 주식을 선보이며 애주가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MC들은 술을 마시며 더욱 솔직한 토크로 웃음으로 화제를 모았다. 

오는 26일에는 IHQ, 디스커버리 채널의 새 예능프로그램 <마시는 녀석들>이 첫 방송된다.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의 스핀오프인 <마시는 녀석들>은 그동안 먹방계의 블루오션이었던 ‘안주 맛집’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으로 주류에 따라 페어링하기 좋은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이다. 

<마시는 녀석들>은 무분별한 음주 문화를 지양하면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스포츠, 친목 등 야외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미식가와 애주가들의 대리만족을 선사할 예정이다.

다채로운 매력의 출연진도 눈길을 끈다. 음식에 대한 진정성이 높고 건전한 애주가로 알려진 배우 이종혁, 코미디언 장동민, 그룹 슈퍼주니어의 규현, 골든차일드 이장준이 출연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를 앞둔 <백스피릿>도 새로 론칭하는 술 예능이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 마주 앉아 술 한 잔 기울이며 술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다. 

나영석 PD부터 ‘배구 여제’ 김연경, 배우 김희애 등 화려한 게스트 라인업으로 이미 소문이 났다.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했던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박희연 PD가 백 대표와 다시 손잡았다.

이렇듯 술 예능이 늘어난 배경에는 최근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이 변화했다는 데 기인한다. 과거 지상파와 일부 케이블 채널 등 이른바 올드 미디어가 채널의 전부였던 때에는 집단이 미디어를 소비한다는 마인드로 인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술을 소재로 하는 건 터부시됐다. 

채널 개인화
아이템 오버

하지만 최근 채널의 개인화가 이뤄지면서 누구나 즐기는 술을 예능으로 활용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문화로 번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전에도 술 예능이 한창 나왔었다. 비판을 적지 않게 받았는데, tvN <삼시세끼>나 SBS <미운우리새끼> 등에서 술 마시는 장면이 조금씩 나오면서 비판 의식이 옅어졌다”며 “사실 술은 누구나가 즐기는 소재라서 금기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청소년에게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는 제작되는 게 무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술과 함께 또 하나 범람하고 있는 예능 소재가 있다. 바로 연애 예능이다. MBC <사랑의 스튜디오>를 비롯해 SBS <짝>, 채널A <하트시그널> 등 국내 연애 예능 계보가 존재한다. 

최근 들어 각종 채널에서 연애 예능을 제작하고 있다. 다만 뻔한 방식을 탈피하기 위해 금기시 되는 부분을 갖고 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카카오TV <체인지 데이즈>와 tvN <환승연애>다.

먼저 <체인지 데이즈>는 위기의 세 커플이 제주도 팬션에서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다른 커플의 이성과 데이트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겹도록 다투면서 소통이 되지 않기도 하고, 너무 오랜 기간 연인으로 지내다 보니 설렘이 완전히 사라진 커플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게 포인트다. 

다만 내 연인, 그리고 상대의 연인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이성과 스킨십이나 귓속말을 하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탄다. 타인에 대한 인의예지를 강조하는 국내 사회에서 그야말로 ‘금기’에 해당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공개된다. 

그 과정에서 내 연인이 이성과 잘 지내는 것이 못마땅해 괜히 다른 이성과 더 잘 지내보려는 노력이 꼭 예뻐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성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닌 그저 본능에 이끌리는 것 같은 장면도 눈에 띈다.

출연자에게 너무 리스크가 큰 설정 탓에 자신의 업종에서 홍보하기 위해 출연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자연스럽게 들기도 한다. 


강력한 본능
판단력 상실

일각에서는 <체인지 데이즈>가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대리만족감을 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애하면서 다른 연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냐는 추측에서 비롯된다. 비록 옳다고 할 수 없겠지만, 머릿속에만 있던 상상이 현실로 펼쳐지는 게 <체인지 데이즈>의 묘미라는 것. 

<환승연애>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귀었다가 헤어진 네 커플이 한 곳에서 지내며 새로운 인연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다만 커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내 연인이 누군지 밝히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채널A <하트시그널>과 거의 다를 바 없는 포맷이다. 달라진 건 한 번 헤어진 커플이라는 것.

이른바 ‘마라맛’이라 불릴 정도로 독한 설정을 끌고 왔다. 정작 방송은 이별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건전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사랑의 속도가 서로 다르듯 이별 앞에서도 각자 다른 시계가 흘러간다.

이미 헤어짐을 완전히 받아들인 남자와 아직 헤어진 것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다가 전 남자친구를 만나고 이별했다는 것을 깨달은 여자,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여전히 미련이 있다는 것을 안 여자와 미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마음이 굳어버린 남자 등 현실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이별 이야기를 생중계 보듯 관찰하게 된다. 

다른 연애 예능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 대신 이별의 슬픔에 공감하며 눈물짓게 된다. SBS <룸메이트>의 박상혁 CP와 나영석 사단에서 <삼시세끼> <여름방학> 등 힐링 예능의 선두주자에 있었던 이진주 PD의 합작품이다. 

박상혁 CP는 “새로운 연인의 후기를 전할 때 먼저 만났던 사람에게 후기를 들으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새로운 사람에 대한 피드백을 줄 수 있으니까.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환승연애>에서는 가능하다”며 “설정은 강하지만 내용에는 힐링이 있다. 이게 가능할 수 있는 건 출연자들의 진심 덕분”이라고 말했다. 

돌싱에 스와핑까지…짝짓기 예능의 변화
‘잠자리 안 돼’ 비틀어 찾는 자극 포인트

두 프로그램이 연애 예능의 새로운 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새로운 연애 예능이 나오고 있다. IHQ에서 방송된 <리더의 연애>는 최근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 리더와 다섯명의 스타가 데이트 시간을 갖고 매칭되는 포맷이다. 

배우 한정수와 배구선수 출신 김요한, 개그맨 이상준, 야구선수 출신 이대형, 격투기 선수이자 가수인 이대원이 여성 리더와 데이트를 한다. 진행은 김구라와 박명수, 한혜진이 맡는다. 

여성 리더를 내세우며 시대의 흐름에 적절히 편승한 느낌이지만, 방송은 어딘가 어수선하다. 마치 데이트가 경쟁하듯이 치러지며, 여성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내쫓기는 형식이다. 모든 데이트 코스는 여성이 정한다. 새로운 방식을 도모했지만, 서로의 교감보다는 누가 더 여성에게 달콤한 남성인가를 겨루는 느낌이다. 

지난 14일 SBS Plus와 NQQ에서 동시 방송된 <나는 SOLO>는 SBS <짝>을 연출한 박규홍 PD의 신작이다. <짝>에서 보여준 사랑의 극사실주의를 보여준 박 PD는 <나는 SOLO>에서도 비슷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다만 사실주의에 너무 치중한 탓인지 로맨틱한 분위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커플 유튜버로 유명한 손민수와 임라라는 새로운 커플의 호스트가 됐다. 왓챠 <러브&조이>를 통해서다. 네 쌍의 남사친(남자사람친구)과 여사친(여자사람친구)들이 출연해,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넘나든다.

친구로만 생각하던 상대방이 실제로 다른 이성과 있는 모습을 볼 때, 정말 질투를 조금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아니면 그동안 몰랐던 감정이 솟구치게 되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체인지 데이즈> <환승연애>의 순한 맛으로 정리된다.

MBN <돌싱글즈>는 이혼의 경험이 있는 8명의 남녀가 이른바 ‘돌싱 빌리지’에서 새로운 연인을 찾아간다는 포맷이다. <하트시그널>의 돌싱 버전이다. 한 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미혼 남녀들과는 달리 훨씬 더 수위 높은 대화가 오간다. 

자녀에 대한 이야기,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 등이 비교적 자극적이다. 어쩌면 이혼을 경험해보지 못한 시청자들에겐 현실적인 조언과 정보가 되기도 한다. 

좀 더 자극적인 연애 버라이어티가 범람하는 이유로 한국식의 자극을 찾고 있는 형태라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미국 연애 버라이어티에는 남녀가 잠자리에 이루는 과정까지 여과 없이 보여주는 데 반해 국내에서는 아직 그 수위까지 갈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자극적인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더 세게
더 강하게

정덕현 평론가는 “요즘 연애 예능은 한국적인 ‘마라맛’을 찾고 있는 느낌이다. 외국 연애 예능은 성적인 부분까지 다 보여주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거기까진 쉽지 않다. 대신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새로운 걸 찾는 것”이라며 “자극적인 예능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어쩌면 한국 연애 예능의 한계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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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