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 퇴출 ‘야한 농담’의 덫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치킨 게임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남녀 갈등은 국내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로 꼽힌다. 수년 전만 해도 일부의 문제에 그친 남녀 갈등은 최근 들어 10~40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서로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고 관용을 앞세우는 대신 혐오를 조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날카로운 대립 형태로 굳어졌다. 그런 가운데 성적인 농담을 한 방송인들이 대중의 도마 위에 올라 ‘마녀사냥’급 비난을 받고 있다.

성적인 농담은 한때 개그의 주요 소재였다. 케이블 채널이 개국하던 2000년대 초반에만 하더라도 남녀의 ‘섹스 심벌’을 강조한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섹스 심벌

tvN <티비엔젤스> <SNL>, QTV <순위 정하는 여자> 올리브 <연애 불변의 법칙> 등의 프로그램은 성을 소재로 발칙한 대화나 선정적인 장면을 선보였다. 

특히 현재 애인의 바람기를 테스트한다는 명목하에 만들어진 <연애 불변의 법칙>은 스킨십의 수위나 내용의 자극성의 정도가 심해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절대 방영될 수 없는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케이블 채널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사도 비슷했다. KBS2 <출발 드림팀>을 비롯해 각종 생활 교양 방송에서 여성의 몸매를 담은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다.


KBS2 <개그콘서트> 역시 남녀 차이를 소재로 한 코너가 적지 않았다. 황현희가 주축인 ‘남성 인권보장위원회’와 박영진·김영희의 ‘두분토론’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신동엽과 김원희를 주축으로 콩트를 선보인 SBS <헤이헤이헤이>도 성적인 묘사가 꽤 많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선정적인 장면이 너무 도드라져 제재가 필요했다. 특히 어린아이에게도 쉽게 노출될 수 있었던 점에서 문제화됐다. 

방송가뿐 아니라 가요계에서도 섹시 콘셉트의 아이돌이 대거 등장했다. 2PM이 성공하면서 대다수의 남자 아이돌이 상의를 뜯었고, 이에 질세라 여성 아이돌들도 짧은 치마와 딱 달라붙는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 섰다. 신인들의 경우 눈에 띄기 위해 심각한 노출까지 이어졌다. 

지속적인 비판을 받은 방송가와 가요계는 2000년대 초반을 거쳐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선정적인 장면을 조금씩 제거해왔다.

그런 가운데 2013년 첫 방송해 2년 넘게 방영된 JTBC <마녀사냥>이 방영됐다. 노골적으로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예능 프로그램이다. 신동엽을 비롯한 MC들은 자극적인 소재를 비교적 진솔하게 소통했지만, 이에 대한 대중의 불편함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종영했다. 

이후 성적인 묘사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의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여성이 비판의 주체였다. 방송에서 스스럼없이 보이는 성희롱적 묘사에 대한 반감이 컸다. 또 도덕적인 올바름을 실현하자는 이른바 ‘PC 주의’가 한국에도 스며들었다.


선정적인 장면이나 연예인의 성적인 표현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개그콘서트>가 맥을 못추던 것도 소재의 제한이 심해진 이때부터다. 

성희롱한 방송인에 철퇴 가하는 남성
도 넘은 남녀갈등…골머리 앓는 예능

앞서 거론된 프로그램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 속에나 있는 판타지 장르가 됐다. 최근에는 성적인 묘사를 조금만 하더라도 철퇴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먼저 성적인 발언이나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행동으로 비난을 받은 남자가 적지 않았다. 

남자의 노골적인 발언에 비난이 치중됐던 현상은 여자 방송인에게도 전이됐다. 남녀를 불문하고 성적인 농담은 금기시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19금 유머를 던지던 김민아와 박나래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됐다. 

먼저 김민아는 유튜브 채널 ‘왓더빽 시즌2’에서 성적인 농담을 미성년자에게 건네면서 공백기를 가졌다. 농담의 수위가 강하지는 않았지만, 대상이 미성년자라는 점이 화근이 됐다.

이후 복귀한 유튜브 채널 ‘왜냐맨하우스2’에서 소위 ‘꼬탄주’라 불리는 <내부자들>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비판받았다. 성희롱 발언의 전과가 있는 그에 대한 괘씸죄에 가깝다.

최근에는 박나래가 유튜브 채널 ‘헤이나래’에서 노골적인 성적 농담으로 인해 철퇴를 맞았다. ‘초통령’이라 불리는 지니와 정반대의 성향으로 19금 개그를 즐기는 박나래와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추구했던 ‘헤이나래’는 방송이 시작하면서부터 논란을 겪다 결국 3회만에 종영 위기에 처했다.

박나래는 이 방송에서 하차하기로 했다. 

특이한 대목은 두 방송인을 비판한 주체가 남자라는 점이다. 앞서 남자 시청자들은 여자 방송인들의 성적인 농담을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솔직하고 대담한 발언을 하는 여성 방송인을 대체로 호의적으로 봤다. 

하지만 김민아와 박나래에 대한 반응은 달랐다. 이 같은 현상은 오래전부터 깊게 곪은 남녀 갈등과 일부 여성 시청자들이 남자 연예인의 지나친 질타로 인한 분노가 터져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남자 연예인들의 작은 행동과 발언에도 불편함을 나타내며 사과 및 하차를 요구한 여자 시청자들에 대한 반발인 것. “우리도 못 참겠다”는 심리에서 발현된 집단행동이다.


이 같은 징조는 유튜브서도 엿보였다. ‘허버허버’ ‘웅앵웅’ ‘힘조’ ‘오조오억’ 등의 남성 비하 발언을 한 유튜버들에게 떼로 몰려가 난도질에 가까운 비난을 남겼다. 남성 시청자들이 주 타깃인 여성 유튜버 중에서 이런 단어를 쓰면 ‘레디컬 페미니스트’로 간주해 심하게 비난했다.

이 같은 시류의 변화를 읽지 못한 김민아와 박나래가 다소 거슬리는 수준의 농담을 던졌다가, 남녀 대전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최근의 남녀 갈등은 혐오가 혐오를 낳은 형태로 비친다. 마치 치킨 게임처럼 서로를 향해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관용과 배려를 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골이 너무 깊어진 듯하다. 

방송가는 골머리를 앓게 됐다. 도대체 수위를 어느 정도까지 조절해야 하는지를 비롯해 단어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 무지로 인해 자막을 냈다가는 한쪽 진영의 일방적인 공세에 시달리게 된다. 

치킨 게임

한 방송 관계자는 “방송에 대한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남녀는 서로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선제돼야 하는데, 갈등의 양상으로만 번지고 있다. 요즘 같은 상황만 보면 남녀 간의 소통은 먼 얘기로만 보인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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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