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깨 무거운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시작도 같이, 마지막도 같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의 임기말을 함께 할 마지막 국무총리 자리는 이른바 ‘독이 든 성배’다.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는 지지율 하락을 신호로 시작되는 레임덕을 대통령과 같이 맞는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그 자리 앞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번의 국무총리 인선 과정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문정부 초대 총리인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국회의장 출신의 정세균 전 총리를 지명할 당시 그 배경으로 가장 방점을 찍은 부분이 통합과 화합이었다. 

3명 모두
통합 강조

앞서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이후 첫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를 초대 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가 새 정부의 통합과 화합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 정세균 전 총리를 문정부 두 번째 총리로 지명하는 자리에서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통합‧화합으로 국민 힘을 하나로 모으고 국민께서 변화를 체감하시도록 민생‧경제에서 성과를 이뤄내는 것”이라며 “이런 시대적 요구에 가장 잘 맞는 적임자가 정 후보자”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기조는 잔여 임기 1년여를 함께할 마지막 국무총리를 인선하는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16일 문 대통령은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정을 쇄신하겠다.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대통령께 전달하겠다”고 지명 소감을 말했다. 이어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소통하면서 상식과 눈높이에 맞게 정책을 펴고 국정운영을 다잡아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치와 사회 현장에서 공정과 상생의 리더십을 실천해 온 4선 국회의원 출신의 통합형 정치인으로서 지역구도의 극복, 사회개혁, 국민화합을 위해 헌신했다”며 “행안부 장관으로서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국민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신뢰를 받았다”고 김 후보자에 대해 설명했다. 

김 후보자의 발탁은 임기말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4·7 재보선 참패 이후 흩어진 민심을 비교적 친문(친 문재인) 계파색이 옅은 김 후보자 카드로 돌파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시작된 레임덕 상황에서 내각을 관리할 인물로 김 후보자가 적임자였다는 판단이다. 

한나라당 탈당 후 열린우리당에
군포서 3선하고 ‘험지’ 대구로

실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직무 긍정률은 30%로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부정률은 62%까지 치솟아 역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4월 셋째 주(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에게 물은 결과다. 정당지지율도 국민의힘(30%)이 더불어민주당(31%)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지난해 12월부터 3월까지 37~40%를 횡보하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3월 둘째 주를 시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질 무렵이다. LH 사태는 4·7 재보선 참패는 물론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문정부 역대 최저치까지 끌어내렸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제는 코로나19 백신 수급, 부동산 문제 등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산재해 있어 반등도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김 후보자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김 후보자가 현재까지 보여준 정치 행보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여권 내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김 후보자는 195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며 여러 차례 구속되는 등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77년 유신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적을 당했고, 이듬해에는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해 실형을 살았다. 1980년에도 신군부에 맞서 ‘서울의 봄’ 시위를 이끌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후 민주통일재야운동연합(민통련),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등 재야 운동권에서 활동하며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다. 

꽃길 걷다
가시밭길로

정치 인생은 더욱 스펙터클하다.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한 김 후보자는 1995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주축이 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 합류했다. 하지만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통추가 갈라지면서 한나라당에 합류, 노 전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 군포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승리하면서 민주당 소장파를 중심으로 창당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당시 김 후보자와 함께 한나라당을 동반 탈당한 김영춘‧안영근‧이부영‧이우재 전 의원을 가리켜 정치권에서는 ‘독수리 5형제’로 불렀다. 

이후 김 후보자는 17~18대까지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꽃길을 걷던 김 후보자의 정치 인생은 19대 총선을 기점으로 변곡점을 맞는다. 그는 19대 총선을 4개월여 앞둔 2011년 12월15일 “내년 총선에 고향인 대구에서 출마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대구는 박정희정권 이후 30년간 민주당 계열의 국회의원이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는 지역이었다. 

김 후보자는 당시 출마의 변에서 ‘지역주의의 벽’ ‘기득권’ ‘과거의 벽’ 등 세 개의 벽을 넘겠다고 선언했다. 기자회견에서는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 제정구 전 의원 등과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통추를 만들었는데, 그때 제정구 의원이 ‘의미 없는 재선·삼선이 되느니 초선으로 명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하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며 “저도 벌써 3선이나 됐으니,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의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대구 수성갑 지역에 출마한 그는 40.4%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이한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김 후보자는 6·4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둔 2014년 3월 대구시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며 또 다시 험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김 후보자는 “대한민국은 통일이 대박이지만 대구는 야당 시장의 당선이 대박”이라며 “대구 출신 대통령에 야당 대구시장이라는 하늘이 내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구에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만들어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교류토록 해 두 지역의 발전과 통일시대를 여는 선구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권영진 후보에 밀려 끝내 당선되진 못했다. 4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김 후보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대 총선에서 다시 한 번 대구 수성갑에 출사표를 던졌다. 상대는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 거물급 인사들의 맞대결에 대구 수성갑 지역은 총선 기간 내내 높은 관심을 받았다.

대선 불출마
선대위원장

김 후보자는 3수 끝에 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보수 텃밭인 대구에서 김 전 지사를 큰 표차로 꺾으면서 김 후보자는 전국구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차기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군으로도 점쳐졌다.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지지를 받는 야권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김 후보자의 존재감이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

김 후보자는 19대 대선에서 잠룡으로 분류됐지만 취약한 당내 기반 등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정권교체를 위한 밀알이 되겠다. 성공한 정권을 만들기 위해 저의 노력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민주당 당원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며 “저의 도전은 끝내 국민의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시대적 요구와 과제를 감당하기에 부족함을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2년에 이어 2017년에도 문재인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대선 당시 대구 선거 유세 과정에서 “평당 5000만원짜리 살면서 1년에 재산세 200만원도 내지 않는 부자들을 위한 그런 나라 언제까지 할 건가”라며 “정신 차리소!”라고 소리친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대구 칠성시장에서 자신을 향해 야유를 던지는 시민들을 향해 “여당이라고 하면 말도 못하면서 야당이 뭐만 하면 삿대질하고 이러니 우리 대구가 20년째 경제가 전국 꼴찌여도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정신 차리소”라며 “여러분이 밀어줬던 그 정당, 나라 와장창 뭉개 버렸잖아요. 나라 원칙을 바로잡아야 합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문 대통령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20%대의 저조한 득표율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에 크게 밀렸다. 하지만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맞대결했을 당시와 비교해 득표율이 상승해 김 후보자로선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그는 문정부 초대 행안부(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내각에 입성했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는 새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인 지방분권, 균형발전, 국민통합의 목표를 실현할 적임자로 판단했다”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때로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에 헌신했다. 특히 분권 가치에 대해서는 한국 최고의 전문가”라고 지명 배경을 밝혔다. 

김 후보자는 2019년 4월까지 1년9개월 동안 행안부 장관으로 공직생활을 하다가 국회의원 신분으로 돌아왔다. 21대 총선에서도 대구 수성갑에 도전했지만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에 밀려 낙선했다. 득표율 차이가 20%p(주호영 59.81% vs. 김부겸 39.29%)까지 벌어진 완패였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범야권이 180석의 압승을 거둔 중에 기록한 패배여서 더욱 쓰라렸다. 당시 그는 “농부는 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농부는 땅에 맞게 땀을 흘리고 거름을 뿌려야 하는데 농사꾼인 제가 제대로 상황을 정확하게 몰랐다. 모든 잘못은 후보 본인의 잘못이니 화를 내지 마시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낙선한 김 후보자는 같은 해 8월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지난해 7월 그는 “책임지는 당 대표가 되겠다”며 “땀으로 쓰고, 피로 일군 우리 민주당의 역사를 당원 동지들과 함께 이어가겠다”고 당권 도전을 공식화했다. 이어 “이번 전대는 ‘대선 전초전’이 아니라 당 대표를 뽑는 전대”라면서 “당 대표가 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대신 어떤 대선 후보라도 반드시 이기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권 경쟁자였던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7개월짜리 당 대표’에 그칠 것이라는 점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됐다. 김 후보자는 이 전 대표, 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과 함께 3파전을 벌였지만 21.37%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이변은 없었다’는 평이 나올 만큼 싱거운 전대였다.

보수 텃밭 당선 일약 대선 잠룡
총선·전대 패배로 존재감 하락

전대 이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던 김 후보자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다시 문정부 전면에 나서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김 후보자를 비롯한 5개 부처 장과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을 재가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는 인사청문요청안이 제출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쳐야 하는 만큼 다음달 10일 이전에 인사청문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언급한 부분, 서울·부산시장 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민주당 당헌 개정 등에 있어서 야당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7월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당시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를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그는 “(전직 비서 호칭과 관련해)논란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확정된 용어가 없어 이렇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당헌 규정에 대해서도 “민주당 당헌에 우리 당 후보가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난 후 치러진 재보선에서 공천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면서 “만약 당원들의 뜻이 공천이라면 제가 국민에게 깨끗이 엎드려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하겠다. 필요하면 당헌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7 보궐선거는 박 전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각각 극단적 선택과 중도사퇴로 자리를 비우면서 치러졌다.

처남과 관련된 논란도 있었다. 김 후보자의 처남은 <반일 종족주의>를 집필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다. 지난해 당 대표 경선에서 처남 논란이 불거지자 그는 “아내와 헤어지란 말이냐”고 응수해 화제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는 과거 발언과 오버랩된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에서는 김 후보자가 무난하게 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행안부 장관 청문회로 한 차례 검증이 이뤄진 바 있고, 대구 출신으로 야당인 국민의힘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온 터라 무리 없이 총리 인준이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 후보자 입장에서는 청문회보다 그 이후 상황이 더 큰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문회 무난
그 다음은?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백신,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 21일 코로나19 백신 수급 우려와 관련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 백신 확보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잘못된 부분에 대해 청문회에서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를 두고 “원칙에 관한 부분은 허물어져선 안 된다”는 입장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사면론에 대해서는 “대통령 판단에 맡기는 게 옳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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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