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빠지는 ‘썰’ 예능의 매력

“이 이야기 알고 있니?”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기가 많다. 어느 자리에서건 남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지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마치 술자리에서 수다를 떨 듯,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제작된 교양형 예능이 주목받고 있다. 근현대사와 괴담, 음모론 등 장르가 다양하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당신이 혹하는 사이, 심야괴담회

MBC 장수 프로그램 <서프라이즈>는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2002년 7월 처음 방송한 이 프로그램은 무려 20년 동안 일요일 오전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전 세계에서 벌어진 다양한 이야기를 재연한 <서프라이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몰입

최근 <서프라이즈>처럼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이하 <꼬꼬무>)와 <당신이 혹하는 사이>(이하 <당혹사>), MBC <심야괴담회>다. 이 세 프로그램은 <서프라이즈>와는 달리 재연 연기의 폭을 최대한 줄이고, 청자의 역할을 하던 출연진을 화자로 내세운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과의 정서적 소통이 원활해질 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몰입도도 높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시도를 가장 먼저 한 프로그램은 <꼬꼬무>다. 지난해 말 10부작으로 편성되며 시청자들은 물론 배우나 가수 등 유명인들로부터 호평받은 <꼬꼬무>는 지난 11일 시즌2를 시작했다. 


영화감독 장항준, 방송인 장도연과 장성규 등 이른바 ‘장트리오’로 불리는 세 사람이 화자다. 세 화자가 준비한 이야기를, 이들이 들려주고 싶은 지인에게 해준다. 방송인 송은이와 김이나 작사가, 방송인 김동현, 엑소 카이 등이 출연했다. 2인1조로 구성된 3개의 팀이 육상 경기에서 바통을 넘기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하나의 주제를 통해 각자만의 방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는 듯 집중한 리스너들의 리액션이 교차 편집되면서, 마치 스릴러 영화에서나 느껴질 법한 서스펜스가 형성된다. 

시즌1에서는 1992년 휴거, 무등산 타잔 박흥숙, 지존파, 신창원,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서진 룸살롱 사건 등 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을 다뤘다. 

<꼬꼬무>가 인기를 끄는 핵심 이유는 물 흐르듯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이다. 타인의 시선을 끌만한 미스터리한 포인트부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12‧12사태를 설명할 때 “헌병대 소속 군인이 한국 군복을 입은 동료로부터 총상을 당했다. 그는 왜 동료가 쏜 총에 맞은 걸까?”라는 식이나, 지강헌 사건을 설명할 때 “탈옥수들은 왜 연희동으로 향했을까?”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일종의 ‘훅(Hook)’을 건 뒤 이야기를 깊게 해부하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알고 있던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안에 숨은 사실과 대중이 평소 생각하지 못한 다른 관점으로도 볼 수 있게 세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소재를 초등학생이 들어도 빠져들 수 있게 눈높이를 맞춘다.

<꼬꼬무>의 연출을 맡은 유혜승 PD는 “나이가 지긋한 선배들은 과거 역사를 몸소 겪으신 분들이라 상식으로 알고 계시는데, 20대에서 30대 초중반의 PD만 하더라도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제작진 역시 처음 공부하는 얘기가 많다.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푼다”고 말했다. 

근현대사 깊고 세밀하게 들추는 <꼬꼬무>
‘음모론’다룬 기획 회의 콘셉트 <당혹사>
전 세계의 괴담을 들려주마 <심야괴담회>


시즌2를 시작하면서, 역사의 큰 사건을 다루겠다고 밝힌 <꼬꼬무> 제작진이 시즌2에 선택한 소재는 12‧12사태와 실미도 사건이다. 시즌1에 비해 재미나 깊이 등 모든 면에서 발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벌써부터 장수 프로그램으로 정착할 조짐이 엿보인다. 

지난 2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나온 <당혹사>는 영화감독이 마치 기획회의를 하는 듯한 콘셉트로 진행된다. 주제는 음모론이다. 현재까지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 사건이 <당혹사>의 소재다. 

장진, 변영주 감독이 발제 형식으로 물꼬를 트면, 배우 봉태규와 장영남, 방송인 윤종신과 송은이, 곽재식 소설가가 이야기를 받는다. 파일럿 편성 때는 코로나19 음모론과 윤영실 실종 사건, 일본 원전 하청 영업직 직원의 정화조 살인 사건을 다뤘다.
 

▲ &lt;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gt; ⓒSBS

제작진은 두 감독에게 주요 정보를 전달한 뒤 스튜디오 뒤로 완전히 빠진다. 7명의 출연진이 음모론과 관련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리얼리즘이 기저에 깔려있다. 

2회 만에 많은 시청자로부터 관심을 받은 <당혹사>는 오는 4월 혹은 5월 중 정규 편성된다. 장경주 PD에 따르면 시즌1의 회차는 4부에서 6부 중 하나가 된다. 이후 열리는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 시즌제로 방영될 전망이다. 

정 PD는 “윤영실 납치 사건은 <꼬꼬무>와 비슷한 형태라는 내부 피드백이 있었다. 정규 편성이 되면 더 확실한 취재와 넓은 이야기로 <꼬꼬무>와는 다르게 차별화를 둘 생각이다. 음모론에 더욱 초점을 맞춰 미스터리한 이야기의 뒷면에 있는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선을 보인 <심야괴담회>는 정규 편성되며 지난 18일 첫 방송을 했다. 공모를 통해 선택된 오싹하고 기묘한 이야기가 출연진의 입을 통해 전하는 방송이다. 방송인 김구라, 김숙, 황제성, 허안나 등 예능인들을 주축으로 카이스트 출신 곽재식 작가와 역사학자 심용환이 출연한다. 

전통적인 괴담은 물론 물귀신 이야기, 고속도로 괴담, 저주, 해외에서 수집된 괴담도 전한다. MBC 시사프로그램 <피디수첩>을 꾸려온 임채원·김호성 PD가 연출을 맡는다.

쉽게

최근 불륜과 이혼 등 자극적인 소재에 얽매여 시청자들을 매혹하는 프로그램이 다수 늘어난 가운데,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제작되는 점은 시청자들에게 호재다. 특히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도 이야기 프로그램의 장점이다. <심야괴담회>의 임호성 PD는 “괴담의 희생양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괴담을 통해 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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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