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예능 늦둥이’ 허재의 인생 3막

방송가 접수한 웃기는 아저씨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성격이 불 같다.” 다혈질의 아이콘이었던 살아있는 농구 전설 슈퍼스타 허재. 이제는 예능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 됐다. 첫 고정 예능 <뭉쳐야 찬다>에서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고, 실제 알려진 성격과는 다른 허당미를 뿜어내더니 예능에 없어서는 안 될 섭외 1순위가 됐다. 끝을 모르고 치솟는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에 대해 살펴봤다. 
 

▲ 허재 ⓒJTBC

“한국 농구 사상 최고의 테크니션.” 농구 대통령 허재를 두고 팬들이 한 말이다. 경기장 밖에서는 사생활 논란과 비판이 많았지만, 농구 코트에서 보여준 그의 플레이에 대한 열정과 실력으로 누구보다 찬사받은 선수다. 팬들은 그가 다른 선수와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농구선수였다고 기억한다.

슈퍼스타
농구 대통령

허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농구를 시작했다. 타고난 재능과 끈질긴 성격으로, 어렸을 적부터 농구 골대 그물이 찢어질 때까지 연습했다고 전해진다. 일찍부터 농구에 두각을 보인 허재의 승부사 기질은 어린 시절부터 두드러졌다. 전국 초등학교 농구대회 결승전에서는 종료 2초를 남기고 역전 슛을 성공시키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허재가 주축이 된 팀은 다른 팀과의 경기에서 전승을 거뒀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그가 주목을 받은 시기는 고등학교 농구부 시절이다. 특급 가드로 불리던 1학년 때 종별 선수권 대회에서 팀의 첫 우승을 이뤄냈다.

압도적 재능을 펼치던 2학년 때는 지난 1982년 아시아 청소년 농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졸업을 앞둔 대회 결승전에서 독보적인 어시스트와 득점력을 앞세워 팀을 정상에 올렸다. 전국 대학팀은 스타가 된 허재 모시기에 나섰는데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경쟁이 유독 치열했다.


그의 다음 행선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웠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중앙대학교에 진학한다. 고등학교 시절 완성형 선수라 불리던 허재는 대학팀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슈퍼스타의 싹을 보인 그는 신인상, 어시스트상 등 상이라는 상은 전부 휩쓸며, 대학 선수 이상의 능력을 보였다. 1986년 열린 농구대잔치에 참가한 중앙대학교는 허재를 앞세워 실업팀을 격파하고 결승까지 올라가는 이변을 일으켰다. 비록 그의 팀은 결승전에서 졌지만 허재의 활약은 눈부셨다.

1987년 중앙대학교에 강동희가 입학하며 한국 농구 전설의 트리오라 불린 허동택(허재·강동희·김유택)이 한 팀으로 함께 뛰었다. 이들은 출전한 경기마다 많은 업적을 쌓았다. 심지어 중앙대학교는 많은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4학년 농구대잔치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팬들은 허재의 불참을 두고 “허재 없는 올해 농구대회의 관중이 줄었다”며 아쉬워했다.

이는 경기에 참여하지 않아도 허재의 슈퍼스타로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그는 ‘대학 선수 중 단연 최고’라는 수식어로 실업팀으로 갈 준비를 끝냈다.

불 같은 성격 접고 푸근하게
“방송이 시드는 날 살려줬다”

대학 최고 스타의 졸업은 실업팀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실업팀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액수의 계약금을 제시하고, 허재가 오기만을 바랐다. 그가 선택한 팀은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였다. 기아를 선택한 이유는 한기범과 허동택 트리오 중 다른 한 명인 김유택이 있기 때문이었다.


허재가 합류한 지 1년 뒤, 후배 강동희 합류로 다시 뭉친 허동택 트리오는 농구대잔치 7회 우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기아의 시대를 아무도 끝낼 수 없었다. 

선수로서 항상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것과 대조적으로, 내내 그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과 논란 역시 선수 생활 내내 끊이지 않았다. 팬들은 허재의 성격과 개인기,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보냈다. 

더불어 허재가 약한 팀과의 경기 전날이면 과음을 하고 나타나 눈에 힘이 없고, 플레이할 때 힘겨운 모습을 보여 농구 팬들의 원성을 샀다. 실제로 그는 선수로서 최고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 크고 작은 논란이 많았다. 위태로운 최고였다.

심판이 상대팀 선수의 반칙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항의해 논란도 많았다.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 때문에 경기 중 상대편 선수의 폭행에 대해 분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화냈던 상황이 문제였다.
 

팀의 내부 문제까지 생겼다. 몇몇 선수들이 은퇴하자, 팀은 제대로 된 선수를 기용할 수 없어 전력이 점차 쇠퇴했다. 이 문제는 주전선수들의 체력 부담으로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유택과 한기범의 부상이 잦아졌고, 선수들의 기량이 하락했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당시 실업 농구계에선 한국 나이 30세는 노장이라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끊임없는 논란과 악재 속에 1994년 농구대잔치에서 허재의 팀은 모교 후배들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선수 은퇴 후 허재는 이를 두고 “커리어 중 대망신”이라고 회상한 바 있다.

최고의 자리에서 추락하자 그는 위기를 느꼈다. 그는 선수로서의 가치를 다시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995년 농구대잔치에서 심기일전한 허재가 맹활약해 MVP를 수상했고, 기아는 우승을 차지했다. 비로소 허동택 트리오 이름에 걸맞은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다음 시즌 농구팬들은 “곧 기아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주협 등이 이끌던 고려대학교가 무서운 기세로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예측과 이상민을 필두로 입대한 스타 선수들로 이뤄진 상무의 기량이 최고로 만개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빵빵 터지는
유쾌한 입담

다시 최고가 되기 위해 허동택 트리오와 새로 입단한 김영만은 최선을 다했다. 선수들의 부상과 체력 저하 등의 악조건 속에서 기아는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위기 중 기회였을까. 허재는 플레이오프 8강 2차전에서 SBS를 상대로 50득점을 기록해 여전히 그가 왕임을 과시했다. 기아는 그해 결승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기아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은 허재도 “이 이상의 최악은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더욱 열악한 상황이었다. KBL이 새로 출범했지만, 그때까지는 아무도 그를 넘을 수 없었다. 1998년 현대와의 결승전에서 그는 팬들이 눈물을 흘릴 만큼 맹활약한다.

오른손의 손등 뼈가 부러지고, 피가 나도 개의치 않고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고 그를 비판했던 팬들은 결국 침묵했다. 7차전까지 이어진 명승부에서 아쉽게 패배했지만, 허재는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팀 최초 MVP를 받았다. 현재까지도 준우승팀 선수 중 MVP를 받은 사례는 그가 유일하다. 
 

▲ 예능 프로그램 &lt;뭉쳐야 쏜다&gt; ⓒJTBC

허재가 농구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유를 모두가 확실히 알게 된 순간이다. 당시 허재의 나이는 은퇴의 갈림길에 선 34세였다. 당시 한 매체는 그를 “상처 입은 사자가 다른 맹수에 포위당한 채, 공격을 당하면서도 결연하게 싸워나가는 모습이 연상됐다”고 평가했다. 

기아에서 시즌을 마무리하고 선수로서의 마지막 생활을 위해 나래 블루버드로 팀을 옮겼다. 선수로서 능력이 전성기 시절보다 하락했지만 새로 이적한 팀에서 자신의 능력 저하를 인정하고 후배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03년 시즌 마지막 우승을 달성한 허재는 1년 정도 선수생활을 이어가다가 2004년 정규리그가 끝나고 은퇴하며 “지도자를 준비하기 위해 코트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농구 대통령은 잠시 농구공을 내려놨다. 농구 대통령의 선수 인생이 화려하게 막을 내린 순간이다. 

인생 1막이 끝나고 2막을 시작하기 위해 그가 날아간 곳은 미국이었다. 2년 동안 객원 코치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그러던 중 감독직을 제안받고 귀국해 2005년 KCC의 감독으로 취임한다. 허재는 KBL 출범 후 최초의 농구선수 출신 감독이 됐다. 큰 우려와 달리 첫 해에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으며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감독을 맡은 두 번째 시즌은 베테랑 선수의 은퇴와 악재가 겹쳐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감독으로서의 역량에 대한 의문이 계속 수면 위로 떠올랐다. 


허재는 자신의 역량에 의문을 갖는 팬들의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 팀을 이끌고 다음 시즌을 철저하게 준비시켰다. KCC는 2008년 정규리그 2위 업적을 달성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팀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9년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시작으로 KCC를 챔피언 자리에 앉혔다. 이로써 허재는 선수와 감독으로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감독이 됐다. 

“그거슨 아니지”
 허당미 발산

수장으로서 선수 트레이드 및 영입을 활용해 팀의 컬러를 압박과 속공으로 바꿔 좋은 결과를 끌어냈다는 점을 많은 사람이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논란 속에서 KCC를 과감하게 변신시킨 후 팀을 우승시키고, 승승장구하며 감독으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감독이었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누구보다 뜨거웠다.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이 열정으로 비쳤던 것일까. 무조건 화내며 심판 판정에 대해 많은 항의를 했지만, 선수 시절의 그의 성격을 알고 있는 팬들은 더 이상 이를 논란거리로 만들지 않았다. 
 

실제로 허재의 팀이 모비스와 붙은 경기에서 모비스 선수가 KCC 선수의 손을 친 적 있었다. 반칙으로 인정되지 않자 흥분한 나머지 화를 내며 ‘Block’이라는 단어를 ‘불낙’이라고 어눌하게 발음해 많은 패러디를 탄생시켰다.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을 때는 중국과 경기 후 인터뷰 중 중국 기자가 “중국 국가가 나오는데 한국 선수들이 움직인 이유”에 대해 질문 하자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 하고 있어, 짜증나게”라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허재의 답변이 큰 이슈가 돼 여론은 “잘 대처했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중은 그가 할 말은 해야 하는 다혈질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불같은 성격은 농구에 대한 사랑으로 비쳤다. 은퇴 후 허재는 한 방송에서 자신의 성격에 대해 “화낼 때만 카메라에 담기고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은 거의 중계되지 않았다”고 뒷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허재의 성격에 대해 선수들은 “감독님은 화낼 때 정말 무섭지만 슬럼프에 빠지거나 무명인 선수도 자신 있게 경기 하라며 독려한다. 선수들의 활약을 끌어 낸 사람”이라고 말했다. 허재는 감독으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 그의 팀 성적은 점점 하락했다.

결국 10년 동안 이끌던 KCC를 떠나게 된 허재는 “팀의 성적이 좋지 않으니 책임지고 자진해서 사퇴한다”는 말을 남기고 농구계를 두 번째로 떠났다. 성적 하락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지휘봉을 내려놨다.

이후 2016년 한국 농구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지만 아들 허웅·허훈을 발탁해 논란이 발생했고, 성적 부진을 남긴 채 국가대표 감독에서 하차했다. 선수로서의 화려한 마무리와는 다르게 다소 씁쓸한 농구 인생 2막이 끝났다.

팬들 기억과 다른 인간적인 면모
예능계 이끌 새로운 스타로 우뚝

1년의 정비 시간을 가진 허재는 농구가 아닌 방송으로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농구 전설의 첫 고정 예능 출연이었다. JTBC <뭉쳐야 찬다>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만한 스포츠계 전설들이 뭉쳐 함께 축구 경기를 하는 스포츠 예능이다. 

허재는 처음에 농구가 아닌 축구라서 출연을 고민했다. 제작진과 출연에 대해 상의하며 고량주 6병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그는 출연 이유로 “술에 취해서가 아니라 PD가 나를 설득하는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고, 추억이 될 것 같아 출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선수, 감독 때 쉽게 화내던 모습과는 다르게 여유로운 모습과 불평과 불만은 많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어딘가 어리숙한 행동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너털웃음 짓는 코 큰 50대 후반 아저씨 캐릭터에 모두가 손뼉을 친다. 

팀이 찬 공을 손으로 잡거나, 헛발질하는 허당의 모습을 보여준 허재는 화려한 애드리브로 “그거슨 아니지”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내는 등 빠르게 예능을 섭렵하고 있다. <뭉쳐야 찬다>를 시작으로 농구 대통령에서 예능 대통령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팬들을 사로잡았다. 
 

▲ 절친 사이로 알려진 허재(사진 오른쪽)와 박중훈

수많은 토크 예능은 발 빠르게 그를 섭외하기 시작했다. 그가 앞으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는 <뭉쳐야 찬다>에 나오는 것 이상은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긴 하다. 하지만 허재라는 사람 자체를 보여준 것으로 왕년 스타의 인간적인 모습을 대중은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허당끼 있는 동네 아저씨 캐릭터는 대중에게 정확히 먹혔고, 이번 방송을 통해 스타에 대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는 허재가 최고였지”라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뭉쳐야 찬다>에 이어 농구에 도전하는 <뭉쳐야 쏜다>에서 허재는 감독을 맡았다. <뭉쳐야 쏜다>는 첫 방송부터 시청률 7%라는 기록을 세우며 시청자들을 안방으로 불러 모았다. 안정환은 선수로, 허재는 감독으로 출연해 뒤바뀐 입장에서 티격태격하는 케미가 부각되자 대중의 반응은 뜨겁다. 

이제는 
스포테이너

과거에는 무거운 왕관을 지고 힘들게 버텨온 감독의 자리였지만 지금은 예능인으로서 허당 감독 캐릭터로 도전하고 있다. 농구 레전드의 농구 특급 과외와 허당이라는 숨겨진 면모가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지 많은 사람이 주목한다.

허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은 시들어가는 나를 다시 살려줬다. 계속 기회가 주어진다면 처음 농구하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안정환, 서장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만능 스포테이너로 변신하는 중이다. 

앞으로 그가 가진 허당 캐릭터와 과거 농구선수 시절 보여주었던 열정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예능 캐릭터의 발굴이 쉽지 않은 예능가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또 과거 농구 전설은 머지않아 예능 전설로 방송계에 한 획을 그을 것이라는 기대가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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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