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US 오픈서만 작아진 전설

눈앞에서 놓친 메이저 타이틀

미국의 전설적인 골프 영웅이면서도 정작 US 오픈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한 선수가 있다. 1895년 이래 1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US 오픈은 미국인들에게 자랑스런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영웅에게도 뼈아픈 상처는 있는 법이다.
 

미국이 낳은 전설적인 골퍼 중 한 명인 샘 스니드는 US 오픈이 외면한 불운의 선수다. 미국프로골프(PGA) 통산 82승으로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려 37번의 US 오픈에 출전해 우승 기회도 4차례나 있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유독 여기서만

1939년 필라델피아의 스프링 밀 골프장. 마지막 날의 파5 18번 홀. 넬슨 등 2위로 따라 오고있는 선수들이 3명, 스니드는 한 타 차로 이기고 있어 파 세이브만 해도 우승이 가능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에 마지막 홀에서 그는 계산 착오를 일으켰다.

17번 홀까지 동점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해야만 이기는 줄 알고 있었던 것. 결국 18번 홀의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려고 무리한 스윙을 하다가 벙커에 볼을 빠뜨리고 말았다.

그는 이미 평정을 잃고 있었다. 벙커에서 무려 5타 만에 그린에 올라온 것도 모자라 3퍼팅까지 하고 말았다. 파5에서 무려 8타, 트리플 보기를 범해 5위에 그치고 만 샘은 가슴을 쥐어뜯었다. 훗날 그는 “10kg은 줄었고, 머리는 다 빠졌다. 잊으려 하다가도 화가 치밀어 신경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고 통곡했다.


8년이 지난 1947년 우승 기회가 다시 한 번 찾아왔다.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 골프장에서 스니드는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6m나 되는 롱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루이스 워샴과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마지막 홀까지 워샴에게 한 타를 뒤지면서 8년 전과는 반대되는 상황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확한 계산으로 정신을 가다듬은 끝에 회심의 버디를 했고, 동타를 만들어 연장전에 돌입한 것.

다음 날 연장전에서도 스니드는 마지막 3개 홀을 남겨놓고 2타를 리드, 그토록 바라던 US 오픈 우승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그러나 불행은 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16, 17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해 내리 2타를 까먹으면서 다시 동타가 돼버렸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두 사람은 동시에 1미터도 안 되는 퍼팅만 남겨놓게 됐다.

스니드 4번에 걸친 준우승
통산 82승 무색케 한 불운 

스니드가 먼저 퍼팅 자세를 잡았다. 두 선수 모두 스니드의 볼이 몇 센티미터 뒤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니드가 먼저 퍼팅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켜보는 갤러리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옆으로 서서 하는 퍼팅이 아닌 스니드 특유의 퍼팅 자세대로, 그는 퍼터를 뒤로 뺐다. 

순간 워샴이 “잠깐!”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순간 적막이 흘렀다. 그는 두 사람의 볼이 홀컵에서 거리가 비슷하니 자로 재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워샴은 왜 소리를 질렀을까. 스니드가 퍼팅을 하려는 순간, 그가 버디를 성공시킬 것 같은 예감이 루이스의 머리를 스쳤을까. 그래서 그는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일까.

그렇게 잠시 경기를 멈춘 채 볼의 거리를 재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 결과 스니드의 볼이 몇 센티미터 더 길게 나왔다. 당연히 처음대로 스니드가 먼저 퍼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니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이미 평정심을 잃어버린 스니드의 퍼팅이 들어갈 리 없었다. 그의 볼은 홀컵을 스치면서 비켜나버렸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크게 땅을 치고 통곡을 해야 할 회한의 70㎝ 퍼팅이었다. 반면 기묘하면서도 저질적일 수도 있는 꾀를 짜낸 워샴은 그대로 버디퍼트를 성공시켰고, 스니드는 다시 한 번 분투를 삼켜야 했다.

3번째 기회는 2년 뒤인 1949년의 시카고 메다이나에서 열린 대회였다. 스니드는 이 경기에서도 한 타 차로 캐리 미들코프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마지막 4번째는 1953년 피츠버그의 오크몬드 골프장이었다. 이번 대회는 스니드의 라이벌이었던 벤 호건을 위한 시합이었다. 호건은 거의 죽을 수도 있었던 자동차 사고에서 회복해,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눈부신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로페즈, 48승 거뒀지만…
끝내 추가하지 못한 여정
 

이 대회에서 스니드는 첫 날부터 단 하루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던 호건을 3일째 경기부터 한 타 차로 따라붙으며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건을 상대하기에 그는 너무도 벅찼다. 마지막 날 스니드는 호건과 무려 6타나 차이가 나는 2위를 기록 했고, US 오픈을 향한 스니드의 여정은 여기서 끝을 맺었다.

여성 골퍼로서 세계 최고의 선수임에도 US여자 오픈과는 인연이 없었던 프로도 있었다. 낸시 로페즈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선수였다. 20세의 나이인 1977년 프로 데뷔 후 78년 9차례 우승으로 올해의 신인왕, 올해의 선수상, 베어 트로피, AP사 올해의 여자선수 등 LPGA를 뒤흔든다.

불행히도 20여년간 메이저대회 3승과 LPGA 48승으로 전설의 반열에 오른 로페즈는 US 오픈과는 인연이 없었다. 무려 4차례나 US 오픈 정상에 오를 기회가 있었음에도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1997년 7월12일 펌킨 릿지 골프장. 불혹의 나이를 맞은 로페즈는 그의 생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US 오픈 우승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3일 내내 60대의 스코어로 신기록마저 세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4일째 경기에서 앨리슨 니컬라스라는 선수가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4타 차로 따돌리고 도망가는 니컬라스를 쫓기 위해 로페즈는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로페즈가 13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한 반면, 니컬라스는 14번 홀에서 더블 보기를 기록했다. 4타 차가 졸지에 1타 차로 줄어들어 로페즈에게 역전의 기회가 왔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트로피의 잔상이 지나갔다. US 오픈이 혹시 그의 품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마지막 18번 홀. 팽팽한 긴장 속에서 두 선수는 기싸움을 하며 모두 안전하게 세컨드샷을 그린에 올렸다. 니컬라스의 볼은 낸시의 볼보다 조금 더 뒤에 떨어졌다.

먼저 퍼팅을 한 니컬라스의 볼이 홀컵에 못 미치며, 60㎝ 앞에 멈춰섰다. 로페즈의 차례였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는 볼 앞에 섰다. 버디를 해야 동점으로 연장전에 갈 수 있다.

운명의 볼이 그린을 타고 홀컵을 향해 굴렀다. US 오픈 무관의 한을 풀게 될 것인가. 볼이 라이를 따라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로페즈는 환호의 제스처를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매정한 볼은 홀컵의 가장자리를 돌며 비껴가고 말았다. 로페즈는 눈을 감았다.

4일 내내 60대 타수의 신기록에도 불구하고 울분을 삼킨 로페즈는 “너무나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이 대회에서 나는 이길 줄 알았다. US 오픈의 여신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행복하고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못 이룬 꿈

로페즈는 잠시 눈을 감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낸시가 8살이 되던 해, 아버지 도밍고는 딸에게 골프채를 잡도록 한 정신적 지주였다. 아버지는 어느 날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낸시, 너는 아마도 US 오픈에서 이기지 못할지도 몰라” 그리고 그는 응답했다. “아빠. 나는 언젠가는 US 오픈을 차지할 수 있을걸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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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