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샌드웨지의 기념비적인 탄생

벙커 두려움 없앤 ‘비밀병기’

17세기 말에 가서야 나타나기 시작한 초창기 아이언세트 종류는 고작 3, 4가지에 그쳤고, 그나마 세분화되지 않았다. 8, 9번 같은 짧은 아이언은 매시(Massie), 니블릭(Niblick) 등으로 불리면서 웨지로 분류되지도 않았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제일 짧은 클럽이 9번 니블릭이었고, 골퍼들은 각자 직접 짧은 클럽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선수들은 벙커에서 쓸 만한 클럽이 없어 여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연한 고안

1920년대 스타였던 월터 하겐도 당시에는 컨케이브(Concave)라고 불리는 웨지 대용의 각도 높은 클럽을 쓰고 있었다. 컨케이브는 오늘날의 샌드웨지와 모양은 같지만 헤드면은 반들반들했다. 가로로 줄이 그어진 오늘날의 아이언 헤드 모양의 그루브는 없었다. 이미 영국에서 다양하게 만들어진 이 대머리 아이언으로 프로들은 샌드웨지를 대신했던 것이다.

영국과 미국 골프협회는 이 클럽의 사용을 중단시켰다. ‘볼이 클럽 헤드면에 두 번 닿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어프로치에 사용하는 숏 아이언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은 골프의 전설 보비 존스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여느 선수들처럼 9번 니블릭을 각도를 더 눕혀 어프로치 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니블릭은 샌드로 사용할 경우 클럽 헤드의 맨 아래 부분인 리딩 에지가 너무 날카로워 모래를 가파르게 파고들면서 볼을 먼저 치게 돼, 선수 입장에서는 때로 홈런성 타구도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골프선수들이 그렇게 벙커에서 고생을 하는 동안 1930년대는 시작됐다. 그해는 보비 존스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역사적인 해였다. 이듬해인 1931년의 어느 봄날, 당대의 전설인 월터 하겐과 보비 존스 못지않았던 실력파 골퍼 진 사라센은 지인이었던 당시의 거물 하워드 휴즈를 방문했다. 

‘웨지’ 단어조차 생소했던 초창기
비행기 이론에서 차용한 힌트

스크래치 골퍼에다 항공기 조종사였던 하워드는 영화 제작 등 다방면에 걸친 비즈니스계의 거장이었다. 두 사람은 그날 비행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워드의 비행 이론은 ‘이륙할 때 꼬리 날개의 지느러미 같은 핀(Fin)이 펄럭이는 역할을 하면서 비행기가 가뿐히 떠오르는 것을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텍사스 집으로 돌아온 사라센은 이 이론을 골프 클럽에다 적용시켜 보기로 마음먹었다.

차고에서 며칠 밤을 새면서 그는 9번 니블릭 헤드 뒷면의 뭉툭 튀어나온 아래 부분에 납 용접을 해서 더욱 두껍게 만들어보았다. 이렇게 하면 헤드 앞면의 가장 아랫부분, 즉 지면과 닫는 부분인 리딩 에지보다 뒷면이 땅에 먼저 닿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헤드 뒤쪽 부분이 먼저 모래 속으로 얇게 들어가면서 앞의 리딩 에지는 볼 뒷면의 모래를 퍼 올리게 되고, 모래와 함께 볼은 자연스럽게 공중으로 뜨는 것이었다. 사라센은 클럽의 헤드 각도를 56도 정도까지 뉘어서 만들었고, 클럽은 볼의 뒷부분을 미끄러지듯이 들어가면서 신기하게도 볼을 공중으로 떠올렸다. 그는 쾌재를 부르며 클럽을 써먹을 때만 기다렸다.

1932년 그는 전통의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하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갔고, 대회장에서도 이 클럽을 숨기고 있었다. 까다로운 영국협회가 행여 사용 금지령을 내릴까 두려워서였다. 다행히 아무도 그의 클럽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샌드웨지와 함께 투어 제패
골프계 뒤집은 위대한 발명


대회 기간 어려운 벙커샷이 있을 때마다 그는 이 비밀병기를 사용했고, 클럽은 백발백중 도움을 주었다. 사라센은 결국 대회 최저타 기록을 세우며 2위와 5타 차나 벌이면서 덜커덕 우승을 했다. 

2주 후 US오픈에서도 그는 이 클럽을 사용해 우승을 하게 됐고, 골프계는 발칵 뒤집혔다. 이 발명품은 ‘샌드웨지’라는 명칭과 함께 당시 클럽 대량 생산을 주도하고 있던 윌슨(Wilson)사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32년 샌드웨지라는 새로운 클럽이 공식적으로 탄생을 한 것이었다.

벙커샷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 구세주였던 진 사라젠과 윌슨사는 무려 75년 동안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샌드웨지를 만들었다. 166cm의 단신이었던 진 사라센은 이탈리아 이민자 혈통의 프로 골퍼였다. 단신임에도 보기 드문 장타자에다 주니어 시절 골프 대회를 휩쓸었던 천재 유망주였다. 

약관 20세에 프로가 된 그는 요시 월터 하겐과 보비 존스 등 유명한 골퍼들과 어깨를 견주는  골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총 7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진 사라젠은 보비 존스와 바이런 넬슨, 잭 니컬라스와 타이거 우즈 등 역사상 5명밖에 없는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우승한, 이른바 커리어 그랜드슬래머 중 한명이다.

1973년 진 사라센은 7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브리티시오픈에 참가해 홀인원을 기록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1902년에 태어나 미국 골프를 개척한 초창기 파이어니어 중 한 명인 그는 20세기 말에 등장한 타이거 우즈가 활약하는 모습까지 본 미국 골프 역사의 증인이었다.

없어선 안 될

1930년 보비 존스가 역사상 최초의 그랜드슬램을 이룬 일과 함께 진 사라센이 1931년 샌드웨지를 발명한 일은 골프에 관한한 미국이 영국보다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는 데 엄청난 일조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현재에도 샌드웨지는 골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클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99년 9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진 사라센은 골프 다이제스트에 의해 600년 골프 역사상 11번째 위대한 골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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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