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LG화학 인도 참사 전말

어린이까지…흙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LG화학 인도공장서 발생한 유독가스 유출 사고로 10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LG화학은 노국래 부사장을 단장으로 지원단을 파견하는 등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담당자 부재 사실과 환경 규정 위반 의혹으로 비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이번 사고를 세계 역사상 가장 참혹한 환경 및 산업재해사고로 기록된 보팔 참사와 비교하기도 했다.
 

▲ LG화학 사고 현장

LG화학 인도공장서 지난 7일, 유독가스 유출 사고로 적어도 11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CNN과 AP 통신, NDTV, 인디아투데이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30분께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샤카파트남 LG폴리머스인디아 공장서 유독가스인 스티렌(Styrene)이 누출되면서 지금까지 어린이 3명을 포함한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소 11명 사망
1000여명 부상

사망자 대부분은 사고 당시 현장 주변서 운전 중이었거나 집 테라스에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일부는 잠을 자다가 그대로 숨을 거뒀다. 또 1000여명에 이르는 인원이 유독가스에 노출돼 부상을 당했고, 이중 20∼25명은 매우 위중한 상태라고 매체는 전했다.

안드라프라데시주 재난긴급대응팀 칸나 바부 팀장은 최소한 285명이 가스중독으로 비샤카파트남 전역의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밝혔다. 공장 인근 마을들에 거주하는 1만명의 주민 가운데 약 5000명이 대피했다고 전했다. 

비샤카파트남 지구 고위관리 테지 바라트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곳곳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으며 1000명 정도를 즉각 분산시키고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고팔라파트남 경찰은 수백명을 구급차와 순찰차, 관용버스에 태워 현장을 벗어나게 도왔고 상당수 주민은 제 발로 탈출했다고 현지 경찰 라마나야가 말했다.

800명에 달하는 부상자는 눈이 타는 듯한 고통을 호소했으며 호흡 곤란, 발진, 구토, 의식불명 등의 증상을 보였다. 누출 가스 영향은 반경 1.5㎞ 이내였지만, 냄새 등은 3㎞ 5개 마을까지 퍼졌다. 병원으로 이송됐던 피해자 일부는 퇴원했다.

현지 당국 관계자는 “LG폴리머스 공장서 합성 화학물질인 스티렌이 유출됐다”며 “화재가 발생한 뒤 가스가 누출됐고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LG폴리머스 공장 내 화학물질을 담은 탱크서 가스가 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관계자는 “탱크 내부에서 열이 발생하고 기화하면서 가스가 샜다”고 밝혔다. 인디아투데이는 “2000t 용량의 탱크서 가스가 누출됐고, 3000t짜리 탱크는 손상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유독가스 유출 1000여명 사상자 발생
책임자 부재 의혹…근무자 절반 계약직

재난긴급대응팀은 가스누출을 최소한도로 막으면서 사고를 수습했으며 “전반적으로 상황이 진압됐고 이제는 복구와 부상자를 치료하는 수순”이라고 발표했다. 인도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3월25일부터 전국 봉쇄령을 내려 다행히 공장 내부에서 근무 중인 인원은 거의 없었다.


지난 4일부터 봉쇄 조치를 완화함에 따라 공장의 조업재개를 위한 준비 작업 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다만 인근 상점과 제조업 등 일부 경제활동은 재개된 상태다.

한국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LG화학은 “현지 주민의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주민과 임직원의 보호를 위해 최대한 필요한 조치를 관계기관과 협조해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당국과 LG화학은 정확한 사고 경위와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다. 즉각적으로 가스누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당국은 공장이 정상 가동을 위해 정기보수와 점검 작업 동안 가스가 새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직원들은 저장탱크서 화학물질이 유독가스로 기화해 누출되는 것을 발견하고 화학물질 중화에 나서는 한편 1시간 만에 공장을 폐쇄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서 유출 가스가 퍼져 나가면서 인명피해가 커졌다. 당국은 오전 3시30분께야 신고전화를 받았고 긴급대응팀이 출동 명령을 받은 것이 5시30분, 현장에 도착한 시간이 6시라고 밝혔다.

더욱이 유출 가스의 냄새가 독해 진입하는데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유독가스는 공장 굴뚝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바람을 타고 주위로 퍼졌다.

언론에 따르면 당시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호흡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해당 지역을 빠져나가려고 뛰다가 거리에 쓰러지는 모습이 TV 화면을 통해 중계됐다.

한 목격자는 안개와 같은 가스가 지역을 덮으면서 공황에 빠졌다고 진술했다. 목격자는 “사람들이 그들의 집에서 호흡 곤란을 겪었고 도망치려고 했다”며 “어둠이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했다.

지방 관리와 해군 소속 인력은 인근 마을 5곳의 주민을 대피시켰고,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대기 중인 구급차에 부상자를 옮기는 등 사고 수습을 도왔다.

한국,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지역 환경단체, 노동조합, 전문가집단 등이 인도서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일으킨 LG화학에 희생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과 건강영향조사,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에서처럼”
환경단체 성명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ANROEV)는 지난 13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성명을 통해 LG화학에 인도서 발생한 사고가 한국서 일어난 것으로 간주해 피해 대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시아 전역 20여개 국가의 100여개 피해자 단체, 노동조합, 환경 및 노동단체 그리고 의학 및 법학전문가들의 연합체인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이하 피해자네트워크)는 직장과 지역사회 건강과 안전의 개선 및 피해자의 권리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피해자네트워크는 LG화학에 “이번 인도공장 가스 유출사건을 한국서 발생한 것으로 여기고 인도주민 사상자에 대한 대책과 인도공장 주변지역의 오염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그것이 LG가 말해온 글로벌스탠다드”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것이 보팔 참사서 미국기업 유니언카바이드가 남긴 교훈이며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영국기업 레킷벤키저가 옥시사태로 남긴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 LG화학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또 성명을 통해 “LG화학의 과실로 인한 가스누출 참사의 비극은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며 희생자들에 대한 즉시적이고, 온전한 보상과 생존자들에 대한 치료 및 재활을 요구했다. 

또 재난에 대한 조사와 노출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급성 및 만성 건강영향조사가 지체 없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네트워크는 “현장 폐쇄 조치 후 작업장의 안전이 보장되도록 현장 실사가 지역사회 및 피해자대표의 참여로 실행돼야 한다.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안전시스템과 강력한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인도 현지의 피해주민들은 유해가스 유출과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이중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 멤버들은 사망한 희생자를 기억하고, 살아 있는 자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네트워크가 언급한 보팔 참사는 1984년 12월3일, 인도 중부지역인 보팔에 위치한 미국 국적의 유니언카바이드 사(현재는 다우케미칼)의 살충제 제조 공장서 유해화학물질인 아이소사이안화메틸이 누출돼 50만명이 노출되고 공식 집계상 2250명이 사망한 사고를 말한다. 

보팔 참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참혹한 환경 및 산업재해사고로 기록된 사고기도 하다. 2006년 제출된 인도 정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가스 유출로 인해 3만8478명의 경상자와 3900명의 중증장애자를 포함해 모두 55만8125명의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사고 후 미국과 인도서 다수의 민·형사 재판이 이어졌지만 사고를 일으킨 회사와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고, 사고발생 지역은 오염된 채 방치돼있다.

인도 주정부는 가스 누출 사고와 관련해 LG화학 측에 사고 원인 물질로 알려진 스티렌을 한국으로 모두 옮기라고 지시했다.

제2의 보팔 참사
스티렌 한국행?

지난 12일 인도 업계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YS 자간모한 레디 안드라프라데시 주총리는 LG화학 계열 LG폴리머스 측에 1만3000t 분량의 스티렌 재고를 한국으로 반송하라고 명령했다.

안드라프라데시 주 당국은 이미 8000t은 한국행 선박에 선적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LG폴리머스 측은 “인도 정부의 지시에 따라 공장 등에 보관하고 있던 모든 스티렌을 한국으로 옮기는 중”이라고 전했다.

화학제품 원료로 쓰이는 고농도 스티렌에 노출되면 신경계가 자극받아 호흡곤란, 어지럼증, 구역질 등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후 현지 일부 주민은 공장 폐쇄 등을 요구했으며 당국도 환경 규정 위반 사실이 적발될 경우 공장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 가디언과 현지 일부 언론은 LG폴리머스가 공장의 설비 확장 과정에서 환경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LG폴리머스가 2019년 5월 당국에 신청한 설비 확장 신청 진술서를 토대로 당시 LG폴리머스는 감독관청으로부터 환경 규정과 관련해 유효한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인도 환경부도 지난 8일, 잠정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LG폴리머스 측이 지난 3월 설비 확장 허가 신청을 했는데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 가동에 들어갔다”며 “이는 환경 규정위반”이라고 지적했다.
 

▲ LG화학 본사

이에 대해 LG폴리머스 측은 “2006년 이전부터 설치 허가(CFE), 운영 허가(CFO) 등 환경 관련 인허가를 받은 상태”라며 “가디언 등에서 제기한 환경 규정위반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인도 정부가 2006년 환경허가(EC)라는 새 규정을 도입했는데 LG폴리머스는 EC 취득 대상 회사가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인도 중앙정부의 확실한 판단을 받기 위해 자진 신고 신청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유출 사고 당시 관리자가 현장에 없었다는 현지 조사단의 발언도 나왔다. 또 현장 근무자 중 절반이 권한이 없는 계약직이라는 증언이 제기되는 등 관리 소홀을 입증하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사실상 사고를 사전에 통제하기 어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제2 보팔 참사 되지 않도록…”
노국래 부사장 현지로 파견

시바 샹카르 레디 비사카파트남 감찰관은 13일(현지시각) 인도 매체 <인디안 익스프레스(IE)>와의 인터뷰서 “공장을 안전하게 재가동할 책임은 찬드라 모한 라오 LG폴리머스 매니저 겸 운영국장에게 있었으나 사고 발생한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그는 공장에 없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사건 발생 당시 공장에는 24명이 근무 중이었지만 상황 통제가 가능한 상급 관리자는 한 명도 있지 않았다”며 “상급자의 감독 하에서 일해야 하는 엔지니어들이 몇 명 있었으며 근무 인원 중 절반은 계약직 노동자였다”고 덧붙였다.

라지브 쿠마르 미나 비사카푸트남 경찰서장은 “사고 공장 운영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수사할 것”이라고 IE에 밝혔다. 사고를 조사 중인 전문가 위원회 역시 당시 책임자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당국이 스티렌모노머 유출 관련 사고 초기 보고서(FIR)에서 발생 장소가 LG폴리머스 공장임을 적시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 노국래 LG화학 부사장

<IE>가 입수한 FIR에 따르면 사고 발생 5시간여 뒤인 오전 7시 현지 경찰 기록에는 ‘공장서 연기가 나고 나쁜 냄새도 풍기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경찰이 스티렌모노머 유출을 확인했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고, 회사 이름 역시 보고서에 없었다고 IE는 보도했다.

LG화학은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노국래 석유화학사업본부장(부사장)을 단장으로 8명으로 구성된 인도 현장 지원단을 파견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우선 국내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고 수습을 계속해서 총괄 지휘한다.

현장 지원단은 공장 안전성 검증과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신속하고 책임 있는 피해복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LG화학은 사고원인 조사와 현장의 재발방지 지원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해 현장 지원단은 생산·환경안전 등 기술전문가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발등에 불똥
지원단 파견

노국래 지원단장은 피해주민들을 직접 만나 지원 대책을 상세히 설명하고, 현지 정부 관계자들과의 면담도 진행할 예정이다. LG화학은 “현재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출·입국이 제한된 상황이지만 한국과 인도 정부기관, 대사관의 적극적인 협조로 신속한 입국이 이뤄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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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