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대표 “언더독의 승리”

칸에 이어 오스카 4관왕까지 ‘놀라운 경험’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부문서 ‘패러사이트’(Parasite)가 울려 퍼지자, 대한민국은 들썩였다. 하나만 받아도 엄청난 성과인데, 영화산업의 종주국인 미국서 4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내 영화계 종사자들은 물론 ‘시네필’이라 불리는 영화광들 모두 한 마음이 돼 기뻐했다.
 

▲ ▲▲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 ⓒCJ엔터테인먼트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제작자로서 이름을 올린 이가 바른손 E&A의 곽신애 대표다. 영화 전문 월간지 <키노>(KINO)의 창간 멤버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영화 <친구> 곽경택 감독의 동생이자 <은교> 정지우 감독의 아내다. 이처럼 주변에 영화인들로 즐비한 그는 자신을 ‘성공한 덕후’라고 칭한다. 기자 시절부터 팬이었던 봉준호 감독 영화의 제작자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연히 자리에 앉게 된 영화 제작사 바른손 E&A의 대표가 돼 강동원 주연의 <가려진 시간>과 김래원이 나온 <희생 부활자>를 제작했지만, 성공에는 실패한다. 그리고 만든 작품이 <기생충>이다. 자신의 자질에 확신이 없었던 곽 대표는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인 제작자가 됐다.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오스카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한국서 유례없었던 경험을 하게 된 그의 놀라운 과정을 들어봤다. 다음은 곽 대표와의 일문일답.

- 오스카 수상 후 소감의 시간이 짧았던 것 같은데 더 할 말이 있다면?

▲곽신애 대표(이하 곽) : 봉준호 감독님 수상 소감을 제가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시상식서 제가 받는 상은 작품상이다. 맨 뒤에 하게 되는데, 감독님 수상 소감을 듣고 겹치지 않게 말한다. 감독님이 정말 상을 받을 줄 몰랐었는지, 각본상과 국제영화상서 다 해버렸다. 그래서 남은 게 아카데미 회원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고마운 게 사실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안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과 영광을 안겨준 상이다. 그것을 굳이 우리처럼 미국 내에 속하지 않은 영화에 준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본질적 가치, 곧 ‘어떤 영화가 본질적으로 좋은 영화냐’라는 것에 제가 생각하는 것과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같았기 때문에 <기생충>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간 공감대가 느껴져 확 가까워진 느낌이다. 전 영어도 못하고 타지서 와 동떨어진 느낌이었는데, 작품상 받고 나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생각이 같구나’라는 기분이 들었다.

- 수상을 어느 정도 예측했나? 네 개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나?

▲곽 : 많은 매체가 예측 기사를 썼다. 계속 바뀌었는데, 막판까지도 작품상과 감독상은 <1917>이 우세했다. 각본상도 <원스 어폰 어 헐리우드>와 각축전이었다. 근데 모든 상들이 모두 우리에게 와서 정말 놀랐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시상식 전까지 평가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하나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영화가 좋으니까 안 주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다 받을 줄은 몰랐다.

칸에서 황금종려상 받을 땐 ‘와!’하고 놀랄 정도였다. 그때도 심사위원까지는 받겠다고 생각했는데, 최고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도 우리가 ‘핫’했다. 봉준호 감독이 인기스타였다. 사람들이 우리만 예쁘게 바라보고 어딜 가나 환호성이었다.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열정적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 국제 장편 영화상 외에 뭐라도 받겠지는 했다. 우리끼리 내기할 때도 다들 감독‧각본‧작품 다 걸긴 했는데, 다 받아버렸는데 그럴 줄은 몰랐다. 송강호 선배랑 저랑 둘이 작품상 걸었다. 제작자인데 작품상 정도는 걸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냥 걸었다.

- 일각에선 <기생충>의 수상이 정치적인 해석으로 인해서라는 의견이 있다. 최근에 무역전쟁이나 트럼프의 신 자유주의와 빈부격차 등에 대해 비판을 하기 위해 이 영화를 선택했다는 예측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곽 : 그런 해석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8000명이 투표했는데, 그런 영향을 받고 투표한 분도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일단 영화에 놀랐고 감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이 영화 만든 사람이 누군가 하고 인터뷰나 공식석상서 소감을 전하는 것을 봤을 것이다. ‘봉 하이브’(봉 감독 열성 팬덤)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정말 거대한 팬클럽 같았다. 봉 감독이 멘트만 하면 웃고 <기생충> 작품 설명만 해도 좋아하고, 아무튼 우리를 너무 좋아했다. <기생충>과 봉준호라는 예술가를 너무 사랑한다고 여겼다.


- <기생충>이 오스카를 휩쓴 배경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곽 : 백스테이지서 한진원 작가랑 봉 감독이랑 셋이서 얘기를 나눈 시간이 잠깐 있었다. 그때 봉 감독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더라. 그때 내가 ‘나는 알겠는데요’라고 했다. 뭐냐고 물어보더라. 그때 내가 한 말이 뭐였냐면, 회원들이 언론이나 여론의 예측대로만 하면 봉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가는 걸 장담할 수 없으니 봉준호라는 이름이 들어간 투표용지에 다 찍은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봉준호란 이름이 명기된 상은 다 받았다.

각본이나 감독, 장편, 작품도 다 봉 감독 이름이 들어갔다. 만약 봉 감독이 다 유력했으면 아마 상을 못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 2~3위였다. 일종의 ‘언더독’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한국서 예측할 때 <기생충>을 안 본 사람들이 많아 수상이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체감은 거의 못 했나?

▲곽 : 대부분 우리가 조합상이나 비평가협회를 갔는데, 비평가 쪽은 다 봤다. 맨날 하는 소리가 ‘나는 몇 번 봤다’였다. 한 번 본 게 아니라 두 번, 네 번 이런 식으로 횟수를 얘기했다. 설레발이라고 하는데, 그 이상으로 정말 애정이 극렬했다.
 

▲ ▲ ⓒCJ엔터테인먼트

- 아카데미가 수년간 변화를 해왔는데, 아카데미 내의 변화를 체감한 게 있는가.

▲곽 : 노미네이션 된 다른 작품의 PD가 “일요일에 네가 받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은 작품상을 <기생충>이 받았으면 한다는 말이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 그녀가 자기 팀에서 욕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웃음). ‘왜 이런 말을 하지?’라는 생각을 해봤다.

정리하면 그 사람들이 원했던 거 같다. 원했던 게 뭘까. 물론 이번에도 좋은 영화가 많았지만, 미국 할리우드 본토서 나온 최고로 좋은 작품이 나온 해에는 다른 나라 작품에 손을 들어주기가 좀 그럴 것 같다. 올해에는 <기생충>이 워낙 탁월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상황에 이런 작품이 나왔는데, 지금 아니면 언제 줄 수 있냐는 생각이 미국 내 회원들 전반에 든 것 같다.

- 봉 감독이 오스카 캠페인 초반부에 굉장히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배급사 대표인 톰킨의 설득으로 마무리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옆에서 지켜보기에 어떤 것 같나.

▲곽 : 톰킨의 설득은 아는 바 없다. 옆에서 보니 감독님은 사교에 시간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보통 영화 보거나 시나리오 쓰거나 같이 영화 만드는 사람들하고만 온 시간을 보낸다. 잘 돌아다니지 않고 최소한의 것들만 한다.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라, 오스카 캠페인 초기에는 ‘얘네들은 무슨 파티를 이렇게 좋아하나’며 힘들어하긴 했다.

아마 본인이 보낸 적 없는 것에 시간을 써야 하니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거기서 만난 배우나 감독들과 이야기하면서 ‘영화를 사랑하고 만드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위안을 찾았던 것 같다.

오스카 캠페인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은 있었다. 이 영화를 참여한 사람들을 위해, 영화의 명성을 위해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긴 했는데, 하는 중에 이 힘겨움을 감내해야 하는 동력은 도저히 못 찾다가 좋은 감독 및 배우들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힘을 얻은 것 같다.


- 오스카 레이스를 마친 지금, 레이스를 처음 겪어본 것에 대한 경험과 소회를 털어놓는다면?

▲곽 : 하면서 ‘이게 도대체 뭐 하는 과정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웃음) 제 나름대로 정리한 건 미국 영화산업이 몇 십년 동안 자기 산업을 선진화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었다. 여름이나 텐트폴 시장에 나온 영화를 제외하고 주목할만하고 힘을 실어줄 만한, 또 미래 세대를 위한 작품을 골라내고 검증해서 상을 주고, 그러면서 다시 영광을 안겨주는 시스템이다.

노미네이트 된 영화에 참여한 사람이거나 상을 받거나 하면 명성과 힘을 얻고 주목을 받는데, 그 과정이 매년 있는 것이다. 저도 미국 영화 중에 기억나는 게 텐트폴 영화라 아카데미 수상작이다. 우리나라도 여름 겨울 텐트폴 영화 말고 영화에 힘을 주는 시스템이 없는 것 같은데, 영화산업의 종주국 같은 미국이 스스로 산업을 키워나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이미경 부회장이 뒤에서 많은 영화 관계자들과 식사도 하고 로비도 하는 등 100억원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설명한다면.

▲곽 : 부회장님이 식사했으면 얼마나 했을까. 그랬다 하더라도 영화가 애매했다면 뽑혔을까 싶다. 그런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같다. 사실 CJ 측이 목표를 높게 잡긴 했다. 나는 잘 몰라서 받을 수 있을지 몰랐다. CJ 실무자들은 주요 부문 노미네이션까지 바라봤다. 그 계획을 잡은 것부터가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캠페인 비용은 다 썰이고 그냥 지원하는 건 없었다.

예를 들어 국내서도 마케팅 비용을 잡을 때 이 영화가 500만일 것 같은데, 돈을 좀 더 쓰면 1000만 갈 것 같다 생각되면 돈을 더 쓴다. 오스카 캠페인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내에서 벌어들일 수익을 고려해 비용을 정했다. 스폰이나 지원이 아닌 마케팅 비용이다.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만 되도 스크린 1000개가 더 늘어난다. 받으면 2000개가 늘어나고, 거기에 맞춰서 전략적으로 썼다.
 

▲ ▲▲ 기뻐하는 <기생충> 제작진 ©A.M.P.A.S.®

LA 시내의 대형 TV에 <1917>과 넷플릭스 영화만 걸려있었다. 우리도 그걸 쓰느냐 마느냐를 고민했다. 이따금 걸렸다. 광고비서 차이가 크게 나고, 일반적으로 홍보비는 비슷하게 쓴다. <기생충>이랑 <조조래빗>이 제일 조금 썼다.

그렇다고 이 부회장이 이바지한 바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 판단을 미리 하고 먼저 나서서 해보자고 한 것이다. 실제로 LA에 사시고 아는 사람도 많아 이 영화가 확산하는 데 분명 도움은 있었다고 본다. 한쪽을 너무 강조하면, 한쪽이 무너진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나 이미경 부회장이나 CJ 모두 다 자기 역할 이상을 잘 해냈기에 이런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 <기생충>으로 인해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곽 :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나? 김연아가 금메달 땄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저절로 다 잘 되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현장서 느낀 건 <기생충>이 좋은 분위기로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잡지나 유명 블로거, SNS서 <기생충>이 재밌었으면 이것도 보라고 하면서 영화 추천이 활발하게 있었다. 넥스트 봉준호에 관한 기사도 있었고, 국내 한국 영화 감독들이 많이 언급됐다. 분명 좋은 효과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부가 되진 않을 것 같다.

- 세계적인 제작자가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제작자로서 살아가는 데 기준이 생긴 게 있나.

▲곽 : 이렇게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을 줄 알았으면, 영어를 좀 더 준비하는 건데 쓸 데가 없긴 하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은 다른 감독들과 영화를 디벨롭(Develop)하는 건데, 거기는 또 거기라서 <기생충>하고는 상관이 없다. 홍보할 때도 절대 내 이름 쓰지 말라고 할 거다.

- 국내서 여러 감독과도 작업했었고 봉 감독과도 작업했는데, 봉 감독이 했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좋은 제작 여건서 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감독들과 갭이 있다고 여기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곽 :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 같다. 봉 감독은 지난 6편을 통해 작품도 좋은데 돈도 번다는 인식을 영화인들에게 심어줬다. 게다가 시나리오도 좋았다. 본인이 쌓은 본인의 성과일 뿐이다. 그런데 신인이 와서 ‘봉 감독은 이런 지원을 받았다’고 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시장이 바라보는 사이즈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 그럼에도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 시장이 그런 모험을 싫어한다는 인식이 있다.

▲곽 : 꼭 그렇다는 생각은 안 든다.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이 평가를 받았다. 영화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막히지 않았다. ‘그 사람의 실력에 다음 시나리오가 이 정도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첫 영화가 결과적으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투자사로부터 ‘괜찮은 시나리오 나오면 보여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엄 감독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다.

- 제작자의 개성이 사라지는 시대라는 말도 있다.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다.

▲곽 : 그렇다면 <가려진 시간>도 투자 받지 못했을 수 있다. 아무리 강동원이 캐스팅됐다고 해도 그랬을 수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데 투자배급사라는 덩어리로 혹은 그 로고로만 떠올리면 안 풀리는 부분이 많을 것다. 투자사 중에도 엄청난 시네필들이 있다. 가끔 나한테 어떤 감독을 소개해달라고 하는데, 사실 흥행을 잘한 감독도 아닌데 왜 만나게 해달라고 하냐고 물어보면 그 감독이 좋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광이 투자사에도 많은데 나보다 더하다.

영화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애매하게 갈등하다가 흥행도 안 되고 평가도 안 좋으면 그때는 진짜 답이 없는 것 같다. 해당 영화 감독을 살려낼 방법이 정말 없는데 그건 제작자의 잘못이다. 나 역시 두 편의 영화로 투자사에 손해를 끼쳤다. 그럼에도 내가 했던 감독들이 차기작을 준비할 수 있는 상황으로 흘러간다. 결국은 시나리오인데 잘 쓰면 의외로 쭉쭉 풀린다. 그 전까지가 힘든 것이다.

- <기생충>과 똑같은 시나리오를 신인 감독이 들고 왔다면, 과연 곽 대표는 작품을 함께 했을 것 같나.

▲곽 : 나라면 했다. 아마 투자사를 설득했을 것이다. 대신에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엑시트>는 돈이 많이 든 영화지만 신인 감독이었다. 결국, 성공까지 했다.
 

▲ ▲ ⓒ문병희 기자

- 봉준호가 아니라 시나리오 때문에 <기생충>을 한 것이라는 말인가.

▲ 무슨 소리냐. 둘 다다. 한국 제작자 모두 봉 감독이 제목만 말해도 다 하자고 할 것이고 백지도 필요 없다. 그 전의 신뢰가 있지 않나. 이미 들은 얘기들은 수도 없이 많다. 봉 감독이면 무슨 작품이라도 한다.

- 봉 감독은 일종의 권력이 됐다. 의견이 부딪혔던 적은 없나.

▲곽 : 권력은 잘 쓰면 좋은 것이고, 휘두르면 나쁜 건데 봉 감독은 월권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나한테 상의를 구한다. 게다가 워낙 준비를 잘 해와서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하게 된다. 물에 잠기는 동네 컷을 만들 때 이미 본인이 공부를 다 해와 예산을 줄여주는 방식이다. 그때 외에도 돈을 계속 줄여준다. 제작자의 고민을 덜어주는 감독이다. 워낙 합리적인 안을 갖고 오기 때문에 다툴 일이 없었다.

가끔 어떤 컷이 이 영화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감독이 그 컷을 계속 고수하면 싸우게 된다. 항상 싸우는 게 이런 부분이다. 투자사와 제작사 간 싸울 때도 있고. 봉 감독은 CG며 뭐며 다 공부를 엄청 해서 그럴 일이 없다.

- 옆에서 봉 감독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봉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 곽 : 정말 착하다. 착하다는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 천재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비위 상할만한 말이나 이런 건 절대 하지 않는다. 저랑 (조)여정씨랑 늘 하는 말이 ‘사람이 어떻게 저래?’다. 여정씨가 봉 감독님이랑 일하면서 사람 대하는 방법이나 상황에 대한 태도를 너무 많이 배우고 감동한다고도 했다. 저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좋은 태도를 보인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다.

- 대표님에게 <기생충> 전과 후는?

▲곽 : ‘영화 제작을 계속해서 해도 될까?’라는 지점서 헷갈림이 많았다. 얼떨결에 위에 계시던 대표 프로듀서가 나가서 대표가 됐다. 이후 열심히 하는데도,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 없었고, 겨우 <가려진 시간>과 <희생 부활자>를 했는데 둘 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제작하면서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기생충>을 하게 됐고, 어쨌든 감독이 큰 역할을 해서 이만큼 왔지만, 적어도 내가 폐는 끼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 원초적인 질문인데, 오빠와 남편도 감독이다. 또 할 생각은 있나?

▲곽 : 절대 없다. 오빠와도 하고 남편과도 했었는데, 한 바구니에 담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각자 하는 게 훨씬 좋다. 남편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좋은 파트너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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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