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사찰과 검열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2.25 10:43:14
  • 호수 12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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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다를 줄 알았더니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청와대가 사찰과 검열 논란에 휩싸였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점차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고, ‘https 차단 정책’은 인터넷 검열 논란을 불러왔다. “문재인정부 유전자에 민간인 사찰 DNA는 없다”는 청와대의 주장과 배치되는 정황이 곳곳서 드러나고 있다.
 

▲ 환경부 압수수색 중인 검찰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이 하는 일이라면 불법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그와 다르지 않다.” 지난 19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원내대책회의 도중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한 말이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사임한 ‘워터게이트’ 사건과의 유사성을 주장한 것이다.

닉슨의 사임
문통 역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김태우 전 수사관(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김 전 수사관의 말에 따르면, 이인걸 전 청와대 특감반장이 김 전 수사관을 포함한 당시 특감반원들에게 전국 330개 공공기관 기관장 및 감사 660명의 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 특히 박근혜정부 때 임명됐거나 보수 성향인 100명을 따로 추려 감찰했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인사들을 위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명목이었다.

지난해 12월 한국당은 환경부 산하기관 8곳의 임원 21명에 대한 사퇴 동향이 담긴 문건을 공개했다. 소위 환경부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각 임원들의 현재 상황을 ‘사표 제출’ ‘사표 제출 예정’ ‘후임 임명 시까지만 근무’ ‘반발’ 등으로 구분해놨다. 


특정 인사에 대해서는 ‘최근 야당 의원실을 방문해 사표 제출 요구에 대해 비난하고 내부정보를 제공한다는 소문’ ‘안종범 전 경제수석이 본부장 임명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나 현재는 여권 인사와의 친분을 주장’ ‘새누리당 시의원 출신으로 직원폭행 사건으로 고발돼 재판 진행 중’이라는 주석을 달아놨다.

한국당은 이 문건이 특감반을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청와대 연루 여부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청와대가 이 문건 내용을 보고받은 적이 있는지, 문건 작성을 환경부에 지시한 바 있는지 등이다.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는 이 문건으로 보수 야권이 공세를 벌이자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내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민정수석실 쪽에 알아본 결과 조국 민정수석과 4명의 민정수석실 비서관, 그리고 이인걸 전 특감반장까지 누구도 이 자료를 보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로
향한 검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 문건에 대해 ‘합법적인 체크리스트’라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해 12월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환경부가 작성했다는 ‘산하기관 임원 직무 동향보고’를 블랙리스트라며 악의적으로 둔갑시킨 한국당의 행태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검찰 수사는 당·정·청의 주장을 무색케 만들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4일 환경부 감사관실과 운영지원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문건이 담긴 ‘장관 보고용 폴더’를 확보했다. 문건이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 등 윗선에 보고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해당 폴더에 있던 문건에는 임기를 남기고 사퇴를 거부했던 김현민 전 환경공단 상임감사와 강만옥 전 환경공단 경영기획본부장에 대해 ‘철저히 조사 후 사퇴 거부 시 고발 조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관련자들을 조사해 “김 전 장관에게 표적 감사 내용을 보고했고, 김 전 장관이 수차례 이와 관련한 지시를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반면 김 전 장관은 “표적 감사 내용을 보고받거나 지시한 기억이 없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검찰은 김 전 장관뿐 아니라 청와대에도 보고했다는 환경부 직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환경부 인사 담당 직원들은 검찰이 관련 문건을 제시하자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산하기관 임원 사퇴 현황을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단서가 될 만한 진술이다.

‘장관 보고용 폴더’ 김은경 출금
검 “BH에 보고” 직원 진술 확보

청와대는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블랙리스트란 먹칠을 삼가주십시오’라는 논평을 내놨다. 이 문건과 블랙리스트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로 대상의 차이를 들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문건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반면, 이번 환경부 문건의 경우 공공기관 인사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책임의 넓이와 깊이가 일반인과 다른 관리대상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 이유로 규모의 차이를 들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블랙리스트의 대상은 2만명이 넘은 반면, 이번 환경부 문건은 임기만료를 앞둔 공공기관 인사 5명에 불과해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세 번째 이유로 업무의 정당성을 들었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서 공공기관의 인사를 보고받고 협의하는 일은 지극히 정상업무라는 논리다. 김 대변인은 논평 말미에 “전 정부와 달리 현 청와대에선 리스트를 작성하지도, 지시한 적도 없다”고 못 박았다.

한국당은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특검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국당 소속 김학용 환경노동위원장은 입장문을 통해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국민적 의혹을 밝혀주리라 믿는다”면서도 “혹여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머뭇거린다면 특검을 통해서라도 명명백백 밝혀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검열 정책
뿔난 2030

문정부의 https 차단 정책이 인터넷 검열 논란을 불러왔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SNI 필드차단기술'을 도입해 불법음란물 및 불법도박 등 불법정보를 보안접속(https) 및 우회접속 방식으로 유통하는 해외 인터넷사이트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방통위는 “2월1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신심의 결과(불법 해외사이트 차단결정 895건)부터 이를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KT·LGU+·SK브로드밴드·삼성SDS·KINX·세종텔레콤·드림라인 등 7개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가 이를 적용했다.

기존 ‘URL 차단’은 보안 프로토콜인 ‘https’를 인터넷 주소창에 쓰는 방식으로 간단히 뚫렸다. 반면 SNI 필드차단기술이 적용된 웹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하면 불법·유해정보 차단안내 홈페이지(warning.or.kr)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 암전(black out) 상태로 표시된다.
 

▲ 김태우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논란은 여기서 시작된다. SNI 필드차단기술은 데이터가 암호화되기 직전 평문으로 노출되는 웹서버 이름을 확인해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자)가 사이트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일부 이용자들이 나서서 “정부가 오가는 데이터 패킷을 일일이 가로채 정보를 확인한 것 아니냐”며 ‘빅브라더’ 의혹을 제기하자 관련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에 참여한 사람은 25만명을 넘어섰다(지난 20일 기준).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야권서도 대열에 합류했다. 

20대 지지율 취임 후 최저
25만명 “검열하지마” 청원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https 사이트를 차단하는 나라가 중국과 일부 중동국가뿐이라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겠느냐”라며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면 국민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 통제는 하지 않는다”고 일침했다.


바른미래당은 가장 적극적으로 정책 반대를 외치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19금 사이트는 19세 이하에게만 금지하면 된다. 단순 성인 사이트까지 막는 것은 성인의 자유 제약”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역 광장에 남성 100여명이 참석해 항의 시위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야동 차단 내걸고 내 접속 기록 보겠다고?” “바바리맨 잡겠다고 바바리 못 입게 하는 건 부당하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야동 볼 권리’를 주장했다. 국가에게 성인의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당국은 더 이상의 확전을 막기 위해 적극 해명에 나섰다. 방통위는 검열 정책 논란에 대해 “정보통신망법 등 근거 법령에 따라 불법인 해외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하는 것은 인터넷을 검열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발표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8∼20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21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지난주보다 0.1%포인트 오른 49.9%로 집계됐다.

빅브라더로
국민 감시

반면 20대에서는 지난주보다 4.3%포인트 하락한 41.5%, 학생 층에서는 4.8%포인트 내린 38.1%로 나타났다. 이는 취임 후 동 연령대 최저치다. 리얼미터 측은 “계층별 등락이 엇갈리며 보합세를 보이는 데에는 경제 활성화 노력 지속, 각계각층과의 소통 강화,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차 북미정상회담이 긍정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경제·민생 불안 요소, 유해 사이트 차단으로 촉발된 인터넷 검열 논란 등이 부정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MB 보석요청 왜?

1심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이 전 대통령 건강 상태가 최악이라고 알리며 재판부에 보석을 재차 요청했다. 이 전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인 강훈 변호사는 지난 19일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에 이 전 대통령 보석 관련 추가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의견서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구속 기간 중인 지난해 8월3일 서울대병원서 진단을 받았다. 전문의 소견서로 확인된 병명만 해도 기관지확장증·역류성식도염·제2형 당뇨병·탈모·황반변성 등 총 9개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의학전문가들이 이 전 대통령이 겪고 있는 ‘수면무호흡증’이 돌연사의 신호라고 언급했다고 주장한다. 수면무호흡증은 동맥경화와 심부전, 폐성 고혈압 등과도 관련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수면무호흡증으로 1∼2시간마다 깨고 다시 30분 후 잠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반면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보석을 허가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15일 공판서 검찰 측은 “이 전 대통령 측이 계속 언급하는 질환은 대부분 만성질환이고 일시적 신체현상에 불과해 석방해야 할 만큼 긴급하지 않다”고 밝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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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