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4000만 배우 류승룡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2.18 10:13:35
  • 호수 1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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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웃음은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배우 류승룡이 영화 <극한직업>을 통해 부활했다. 4년의 침체기 끝에 만들어낸 값진 성과다. 더불어 대한민국 첫 ‘4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 ▲최근 <극한직업>으로 400만 배우 반열에 선 배우 류승용

지난 1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극한직업>은 전날 17만1933명을 동원해 일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누적 관객수는 1342만3252명이다. <극한직업>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개봉 15일 만에 1052만9774명을 동원해 1000만 돌파의 쾌거를 이루었다. 

<극한직업> 대흥행 
특별한 이유는?

<극한직업>의 흥행세는 괄목할 만하다. 역대 코미디 영화 최고 오프닝, 역대 1월 개봉영화 최고 오프닝(이상 36만8442명), 역대 1월 영화 최다 일일 관객 수(99만4577명), 역대 설 연휴 최다 관객 수(525만7243명) 등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1200만 돌파 속도는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2014·15일)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

이 같은 추세라면 1400만 관객 돌파도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400만 고지를 밟은 영화는 역대 박스오피스 1~3위인 <명량>(1761만명)과 <신과함께-죄와 벌>(2017·1441만명), <국제시장>(2014·1426만명) 세 편뿐이다.

<극한직업>은 여타 ‘1000만 영화’들과 달리 장대한 스케일이나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대신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호흡과 재치 넘치는 대사가 어우러지며 시종 뚝심 있게 ‘웃음’을 던진다.


작품의 외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무게감 있는 작품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서 이 영화가 지닌 경쾌 발랄함이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현실의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고 싶다는 관객들의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극한직업>의 마약반 5인방의 활약과 팀플레이도 돋보인다. 이병헌 감독의 재치 넘치는 대사와 범죄 조직 소탕을 위해 치킨집 위장 창업을 시작한 마약반의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200% 살린 배우들의 열연이 흥행에 한몫했다. 

고된 일상 속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웃음을 선사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낮에는 치킨장사를 하고 밤에는 잠복근무를 하며 수사를 하는 것인지, 장사를 하는 것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들. 특히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형사들이 건수를 올리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한다는 기발한 설정은 웃음과 동시에 공감을 자아낸다.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하는 거야”라는 극 중 대사가 그렇듯, 각자의 극한직업을 견뎌내고 있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건드린다.

개봉 15일 만에 1000만 관객 돌파 
극장가 코믹돌풍…코미디 영화 1위 

그 중심에는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낸 류승룡의 역할이 빛났다. 류승룡은 극중 고반장 캐릭터로 열연했다. 마약반 5형사 중 리더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찰진 대사 소화력과 좀비 액션으로 웃음을 이끌었다.


특히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고반장의 대사는 관객들 사이서 회자되며 숱한 패러디를 낳고 있다. 

코미디 영화가 1000만 기록을 낸 건 6년 만이다. 지난 2013년 <7번방의 선물>이 역대 코미디 중 최초로 1000만을 찍었다. 최종 스코어는 1281만명. <7번방의 선물>과 <극한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배우 류승룡이 주연배우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류승룡은 6년 전 자신이 세웠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됐다. 최근 흥행 부진을 겪었던 터라 더 값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류승룡에게 최근 4년은 부진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명량>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작품활동을 멈춘 건 아니었다. 천우희, 이성민과 함께한 <손님>(2015), 수지를 전면에 내세운 <도리화가>(2015), <부산행>(2016),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염력>(2018), 장동건과 호흡한 <7년의 밤>(2018)까지 매해 한 편 이상의 신작을 선보였다. 그러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이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작품이 <염력>으로 고작 99만111명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침체기가 계속되자 한 예능프로그램서 시작된 구설 때문이란 의견도 나왔다. 2014년 대학동창인 배우 김원해, 이철민이 “(성공한 후)류승룡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게 논란이 됐다. 애당초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 모든 건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미 ‘인성 논란’ 꼬리표가 붙은 후였다. 시기가 겹치다 보니 이 해프닝이 류승룡의 호감도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여론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보다 ‘작품’ 문제가 컸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서일까. 류승룡은 이상하리만큼 대중적인 작품을 고르지 않았다. 이와 관련 류승룡은 “그동안 대체로 신선한 걸 선택했다. ‘이걸 보면 깜짝 놀라겠지? 짠하고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한직업>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주연배우인 류승룡은 대한민국 최초로 ‘4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명량>(1761만명), <7번방의 선물>(1281만명),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명) 등 3편의 1000만 영화에 주연배우로 참여했던 류승룡은 동률을 이루던 송강호(<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를 제치고 1000만 영화 4편을 보유한 유일한 배우가 됐다.

류승룡표 코미디
관객들 사로잡아 

‘명절 불패신화’도 이어갔다. 설 연휴 기간 1000만 고지를 넘은 <극한직업>을 비롯해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은 모두 성수기로 분류되는 명절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작품이었다.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은 역대 한국 영화는 총 18편. 그중 명절에 맞춰 포문을 연 영화는 류승룡이 출연한 세 편뿐이다. ‘명절 = 류승룡’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탄생한 셈이다.

류승룡은 최근 공개된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서도 호평을 받으며 ‘쌍끌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한직업>에서는 코믹한 면모를 강조한 반면, <킹덤>에선 서슬 푸른 세도가 조학주 역을 맡아 카리스마를 뽑냈다. 

류승룡은 “본의 아니게 출연작 2편이 동시에 공개돼 ‘피로도가 있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두 작품의 결과 제가 맡은 캐릭터가 달라서 다행이었다”며 “사극에 좀비가 가미된 <킹덤>과 신파 없이 코믹 장르에 충실한 <극한직업> 모두 익숙함 속에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 대중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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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촬영을 준비하면서 1순위로 류승룡을 원했다고 한다. “캐릭터끼리 화학작용을 빚어내면서도 밸런스를 맞출 줄 아는 배우는 류승룡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류승룡은 어깨에 힘을 빼고 밸런스를 고려하며 움직일 때 가장 쫄깃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서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왕 대신 저잣거리 천민에게 “왕 노릇을 하라”고 제안하는 신하 허균을 연기했다. 신중하고 빈틈없는 전략가로 나오지만 중간중간 캐릭터 균형을 잃지 않는 선에서 관객을 웃긴다. “적당한 선에서 유머를 주자”는 아이디어는 그의 머리서 나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서도 류승룡은 과장된 몸짓으로 관객을 애써 웃기려 들지 않는다.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며 소젖을 짜는 일명 ‘핑거발레’ 같은 것으로 객석을 뒤집어놓을 뿐이다. 류승룡은 “터지기 직전까지만 갈 때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꼭짓점에 애써 오르려 하지 않을 때 가장 그다운 웃음과 긴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얘기다.

류승룡은 지난 10일 서울 CGV서 열린 <극한직업> 무대인사를 통해 “오랜 시간 많은 배우, 스태프들이 정성 들여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고 가족이 생겼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류승룡은 충청남도 서천군서 1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예전(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출신으로 같은 과 동기로는 안재욱, 정재영, 황정민, 신동엽, 임원희, 김현철(코미디언), 이철민 등이 있다. 그는 동랑극단을 통해 데뷔한 정통 연극파다. 

한동안 실패
부진 싹 씻어


대중에게 그가 알려진 것은 <난타> 초기 멤버로 활동하면서였다. 그는 대학 동기인 김원해와 함께 <난타> 원년 멤버로 활동했다. 주방서 벌어지는 요리사들의 소동을 그린 <난타>는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기존의 뮤지컬과 달리, 대사 없이 주방 도구들을 활용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비언어적 퍼포먼스’ 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를 넘어 영국, 미국서도 호평을 받으며 순회공연을 했으며 류승룡 역시 멤버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난타>로 입지를 다진 류승룡은 2004년 장진 연출, 정재영 주연의 <아는 여자>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 데뷔를 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강도 1.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주인공 치성(정재영)이 대출을 받는 은행에 침입하는 캐릭터다. 다만 제대로 된 강도가 아니라 단순히 ‘8인조 강도’라는 기록을 깨기 위해서 9명의 회원들이 뭉친 것이다.

분홍색 복면을 쓰고 어설프게 협박을 하는 그의 모습은 ‘어이없음’에서 비롯되는 실소를 자아냈다. 그의 첫 영화 캐릭터는 코미디인 셈. 이후로도 류승룡은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 등 연달아 장진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다.

<7급 공무원>의 코믹한 요원, 기이한 사건들로 혼란스러워하는 <불신지옥>의 형사 등 류승룡은 그동안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영화 속 이미지 중 하나는 거친 인상의 악역이다. 그 시작점은 2008년 개봉한 느와르 스릴러 <시크릿>. 류승룡이 맡은 역할은 폭력 조직의 보스  '재칼'로 역할의 설정과 이름부터가 ‘나는 악역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는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주인공 성열 형사(차승원)와 대립하는 인물이다. 외관은 물론 표정, 대사 등으로 느와르적 분위기를 극대화한 캐릭터. 류승룡은 ‘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연기할 때 거의 눈을 깜빡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2012년 류승룡은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초창기 장진 감독의 작품 등에서 쌓아올렸던 코미디 감각의 ‘포텐’을 터트렸다. '전설의 카사노바' 장성기를 연기한 류승룡은 온몸에 버터를 바른 듯한 느끼함으로 역할을 소화했다. 그는 온갖 오버스러운 표정과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인물. 그러나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능청스러움으로 과장된 연기와 생활 연기를 자연스럽게 오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억지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 연기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코미디를 보여줬다. 류승룡 역시 정극뿐 아니라 코미디서의 재능도 여실히 증명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계기로 류승룡에게는 ‘더티 섹시(더럽지만 섹시하다)’가 수식어처럼 붙기도 했다.

<7번방의…> <명량> 이어 세 번째
대한민국 유일의 4000만 배우 등극

같은 해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이병헌과 함께 코미디와 진지함의 중도점을 맞추기도 했다. 두 배우는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코믹한 상황을 함께 연출하며 남다른 케미를 선보였다. 그 결과 <광해>는 1200만 관객을 동원, 흥행에 대성공했다. 이후 코미디와 드라마를 결합한 <7번방의 선물>까지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류승룡은 ‘연기력과 티켓파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은 배우가 됐다. 

류승룡은 <최종병기 활> <명량>을 필두로 작품 속에서 여러 언어를 구사한 배우로도 유명하다. 최근 시대극으로 흥행가도를 달린 김한민 감독은 두 작품서 류승룡을 청나라인, 일본인 악역으로 변신시켰다. 당연히 구사한 언어는 만주어, 일본어다. 특히 <최종병기 활>에선 청나라의 장수 쥬신타를 연기하기 위해 삭발을 강행해 변발로 출연했다.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에서는 북한 방언을 통해 고구려인을 표현, <고지전>에선 북한말을 구사하기도 했다. 국적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유람한 과거가 있다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기 역에서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심지어 아프리카어까지 보여줬다. 외국어, 사투리 대사의 경우 어색한 억양, 발음 등으로 연기력 논란이 일기 쉽지만 류승룡은 수준 높은 언어 구사력으로 어색함 없이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최종병기 활>서 만주어나 다른 작품서 스페인어, 불어, 일어 대사들도 무식하게 외웠다. 하도 많이 해서 매니저들이 외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무식하게 한글로 써서 외웠다. 글씨 크기로 억양을 표현했다. 창피한 방법이었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화도 영화지만 류승룡 하면 역시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 그는 팔도의 ‘남자라면’ 광고서도 이를 그대로 활용했다. 느끼한 표정으로 마늘을 부수고 도끼로 파를 자르는 등 특유의 코믹 연기를 1분30초 동안 쏟아부었다. 또 하이라이트인 “맛의 올가미, 맛의 덫, 맛의 감옥”은 “맛의 올가미”까지만 대본이고 뒤는 류승룡의 애드리브라고 한다.

장면·장면마다
독보적인 캐릭터

남자라면을 시작으로 류승룡은 아버지의 이미지, 호쾌한 이미지 등으로 여러 광고에 출연하며 광고계 블루칩 배우가 됐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 광고다. 그가 출연한 배달의 민족 광고만 해도 무려 7편이 넘는다. 풍속화를 이용하거나 영화 예고편을 표방한 재치 있는 아이디어의 광고는 류승룡의 연기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누구?

이병헌 감독은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을 각색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냄새는 난다>의 감독을 맡았으며, 2009년 제4회 대전독립영화제 장려상,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서 최우수 국내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1년 영화 <써니> 스크립터와 각색에 참여했다. 

2013년 이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페이크 다큐 형식의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로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았으며, 이 영화는 제9회 제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호평을 받았다. 이 감독은 스무살 청춘들의 찌질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을 유쾌하게 담아낸 첫 상업영화 <스물>, 네 남녀의 좌충우돌 불륜 이야기 <바람 바람 바람>, 그리고 <극한직업>을 통해 독보적인 ‘코미디 세계’를 구축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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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