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끄는 홍일표 사건, 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7.03 10:10:51
  • 호수 1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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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가 바쁜데 ‘세월아 네월아’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정치자금법 위반, 전관예우 의혹, 정치 철새…. 안 좋은 건 다 걸렸다.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 얘기다. 홍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 중이다. 검찰은 수사 1년 만에 홍 의원을 기소했는데, 그 배경을 두고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3선 중진 의원인 자유한국당 홍일표(인천 남구갑) 의원이 수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고 선관위에 보고한 정치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쓴 혐의로 재판 중이다. 인천지방검찰청은 지난해 3월17일 인천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홍 의원과 의원 사무실 회계책임자 A씨 등 7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판사 출신에 
법조인 집안

A씨 등은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6년간 홍 의원의 정치자금 수입·지출용 계좌서 차명계좌를 통해 본인과 직원 5명에게 급여 명목으로 월평균 300만원씩 입금하는 2억1000여만원을 부정 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천시 선관위는 A씨가 돌려받은 돈 중 4000만원을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개인계좌 등을 통해 정치활동 경비 또는 사적경비로 지출한 내역을 포착했다. 하지만 홍 의원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밝혀내지 못해 인천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인천지검은 지난해 3월21일 남구 미추홀대로 홍 의원의 지역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회계 관련 서류 등을 확보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이제야 재판
통상 두달…1년 넘기고 수사 마무리

그런데 인천지검은 1년 동안 기소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더니 지난 3월31일 홍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검찰이 정치자금법 수사를 1년 동안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실제로 그 동안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국회의원들의 수사 과정과 속도를 비춰볼 때 홍 의원의 사례는 ‘특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국민의당 박준영 의원, 20대 총선서 3억5200만원의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 지난해 4월20일 수사가 시작, 그해 8월8일 불구속 기소까지 111일 소요.

▲자유한국당 이군현 의원, 보좌진 급여 중 2억4600만원을 돌려받아 국회에 등록되지 않은 다른 직원 급여와 지방 사무소 운영비로 쓴 혐의. 지난해 8월4일 수사 시작, 그 해 8월25일 불구속 기소까지 22일 소요. 

▲새누리당 박상은 전 의원, 불법정치자금 6억원과 해운조합에게 300만원을 받은 혐의. 2014년 8월7일 수사 시작, 그해 9월5일 구속 기소까지 30일 소요. 

검찰이 눈치?
기소가 부담? 


이처럼 검찰의 국회의원 정치자금법 수사는 기소까지 평균 두 달이 채 걸리지 않는다(수사 시작 기준은 언론보도에 본격적으로 보도된 시점부터 정함). 반면 홍 의원은 수사부터 기소까지 총 379일이 걸렸다. 다른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특혜라고 불릴만하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이런 특혜의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먼저 홍 의원은 판사 출신이며 법조인 집안이라는 점이다. 

홍 의원은 사법연수원 14기로 1985년 대구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인천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서울고등법원 ▲대법원 재판연구관 ▲인천지방법원 등에서 1999년까지 판사로 근무했다. 

홍 의원 동생 홍이표 의정부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와 아들 홍성균 서울동부지방법원 판사가 현직에 있다는 점도 기소 여부와 재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회의원 임기 동안 재판만 하다가 끝날 것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홍 의원은 지난 5월30일 첫 재판이었지만 재판연기 신청을 했다. 재판연기 신청은 통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도 1년을 끈 홍 의원이 기소된 이후에도 법조계 출신과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홍 의원 변호인 측은 “변호인이 맡은 다른 사건의 공판기일과 겹쳐 날짜를 조정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일각에서는 홍 의원이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었으며, 검찰과 밀접한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를 지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이번 국회에선 같은 당인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서 검찰이 홍 의원 기소에 부담을 느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뒤따른다. 실제로 인천지검에선 수사를 충분히 했지만, 정작 대검찰청에서 결제를 미뤄 기소하는 데 1년 이상 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사건은 1년이나 수사할 만큼 복잡한 것도 아니다.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홍 의원이 법사위 간사였고, 판사 출신이었으며 여당이라는 프리미엄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저럴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서도 홍 의원의 기소 지연과 재판과 관련된 비판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은 “법조인 출신과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끊임없이 사법농단을 시도하고 있다”며 “법조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법조계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게 스스로 당당하게 재판에 임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런 의혹들에 대해 홍 의원 측 의원실에 전화했지만 관계자는 “전혀 모른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다만 앞서 홍 의원 측은 정치자금법 혐의에 대해 “차명 계좌가 존재하는지 몰랐다”며 “개인 채무 관계에서 비롯된 자금이며 정치 자금 부정 지출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지난달 29일 첫 재판이 열렸으며 다음 재판은 오는 8월29일인 것으로 전해진다. 홍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가 확인될 경우 의원직을 잃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이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 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미적미적∼
상당히 이례적

당 내부에서는 홍 의원이 기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당원권 정지가 안 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유한국당 당원당규 윤리위원회 규정 제22조(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자의 징계 특례) 조항에 따르면 뇌물과 불법정치자금 공여 및 수수, 직권남용 등 부정부패 범죄로 기소된 당원은 기소와 동시에 당원권이 정지된다. 


당원권이 정지되면 당내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박탈되며 전당대회 투표권도 행사할 수 없는 등 당내 활동이 제한된다. 홍 의원은 지난 3월31일 정치자금법으로 기소됐지만 여전히 당원권이 살아 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측은 적법하다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 당무감사위원실 관계자는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대선 당시 당무우선권을 발동하면서 바른정당 탈당파 12명의 복당과 친박(친 박근혜)계에 내려진 징계가 해체됐다”며 “홍 의원은 기소된 상태였지만 당무우선권이 발동되면서 당원권 정지도 같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시간 걸린 이유는?
대검서 결제 미뤄 

하지만 자유한국당 당직자들은 지도부 판단보다 당헌당규가 우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한 당직자는 “실패한 대선 후보가 발동한 초당권적인 당무우선권으로 당헌당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기소된 의원들에 대해 당원권을 정지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홍 의원은 지역구 인천 남구에선 철새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혔다. 홍 의원은 국정 농단 사태로 추락하는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겨 자유한국당서 탈당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동참했다. 

하지만 바른정당 사정이 여의치 않자 홍 전 지사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며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홍 의원의 복당은 결국 패착이었다. 대선 개표 결과 보수세가 강한 홍 의원 지역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구서 문재인 대통령이 38.07% 기록하며 홍 전 지사를 크게 앞섰다. 

재판연기 신청
또 시간끌기?

홍 의원의 탈당은 지역민심과도 동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천 남구시의 한 유권자는 “배신의 정치와 정치 철새가 됐다. 바른정당 인기가 없다고 해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지역에서는 상당히 좋게 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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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