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선주자 검증> ②정치입문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3.27 09:57:53
  • 호수 1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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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vs 흙수저…과연 용수저는?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대선 정국의 막이 올랐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궐위 후 60일 이내 대선 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오는 5월9일을 19대 대선일로 공표했다. 대선일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 <일요시사>는 숨 가쁘게 흘러갈 대선 정국서 후보 검증을 갖는 시간을 준비했다. 그 두 번째 항목은 유력 대선주자들의 정치입문이다.

연일 강공 발언을 쏟아내며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한창인 대선주자들의 정치 초년병 시절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선주자 중 누군가는 금수저로, 누군가는 흙수저로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한 링에서 오직 대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 그림자

문 의원은 대학시절 유신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구류에 처했다. 이듬해에는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사법고시 합격통지서를 유치장에서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학생운동 전력으로 인해 판사 임용에 실패했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서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의 길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당시 청와대에 들어갈 때 노 전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 ‘정치하라고 하지 말아 달라’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돌연 사퇴하고 아내와 함께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났다. 히말라야 체류 중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들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탄핵 대리인을 맡아 활동했다. 이후 청와대에 재입성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재단법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이후 19대 총선,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2012년 당시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대선주자로 발돋움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자대결구도를 만들었다.

당시 대선에서는 100만표 차이로 낙선했다. 이후 5년이 흐른 현재 30% 이상의 고공 지지율 행진을 이어가며 ‘문재인 대세론’을 이어나가고 있다.

[안희정]
김덕룡 비서부터

학창시절 학생운동을 위해 자퇴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검정고시 합격 후 1983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4학년때 고려대 내의 운동권 서클 14개를 통합해 애국학생회를 조직했다.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안기부에 체포돼 10개월 동안 수감됐다. 전과 기록은 취업을 하려던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안 지사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학교 2년 선배 김영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1989년 1월, 안 지사에게 국회의원 비서 자리를 소개해줬다. 안 지사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실장직을 수행했던 김덕룡 의원의 의원실로 출근했다. 하지만 이듬해 3당 합당이 이뤄지면서 안 지사는 김영삼 총재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꼬마민주당(통일민주당)’서 당직자 생활을 이어나갔다. 1991년에는 사직서를 내고 창원 노동복지회관을 짓는 공사장서 2달간 건설 일용직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1992년 정계를 떠난 뒤 그는 출판사 영업부장으로 일하면서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복학해 학업을 마쳤다.

이후 14대 총선서 낙선한 노 전 대통령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캠프의 행정팀장, 정무팀장을 맡으면서 참여정부 출범에 공신역할을 했다.


문, 참여정부 황태자…초선부터 잠룡으로
보좌진 출신 안희정, 한때 부침 겪다 성장

하지만 불법대선자금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하면서 그는 부침을 겪었다. 참여정부의 출범에는 일조했지만 공직은 사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안 지사에 대해 “나 대신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다 했다”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안 지사는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되면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2010년 지방선거서 충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충남 역사상 최초의 민주당 출신 도지사였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서 당시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정치권은 굴곡의 시간을 보낸 안 지사가 ‘대망’의 꿈을 이룰지 주목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님 파워

경북 안동 출신의 이재명 성남시장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1976년 성남으로 이사 온 그는 불과 14세의 나이에 상대원 공장의 목걸이 공장에 취업했다. 그는 저서에서 “납과 염산에 얼굴을 묻고 살았다. 납 같은 게 몸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 시장은 산업재해로 장애 6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공장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한 뒤 사법고시까지 패스했다. 그는 판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이 시장은 저서에서 “주변 동료들에게 인권변호사를 하겠다고 너무 설레발을 쳐놓았던 터라 성적을 떠나 판사도 검사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성남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경기도 이천시와 광주시에서 노동상담소장으로 활동했다. 1994년에는 성남참여연대를 결성했고, 2000년에는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그는 청원운동을 벌이다 시의회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은 지 14년 만의 일이다. 성남서 2번의 낙선을 경험한 그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51%의 지지율을 얻고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시장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 3년 만에 4500억여원의 빚을 갚았다. 청사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무상급식과 ‘기본소득’의 일종인 청년배당을 시행했다.

그의 활동에 성남시의 마음도 움직였다. 지난 2014년 재선에 도전한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해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탄핵정국서 다른 대선 후보와 다르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주목받았다. 또한 선명성을 드러내면서 한때 대선주자 지지율 2위를 꿰차기도 했다. 현재는 지지율 정체 국면인 가운데 당내 경선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안철수]
지난 대선 때 데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부산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박사과정을 밟던 중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7년여간 이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안철수연구소(현 안랩)’를 세워 개인에는 백신을 무료로 보급하고, 기업에는 사용료를 받는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했다. 이후 안철수연구소에서 물러난 안 전 대표는 MB(이명박)정권 시절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정치권에 ‘안풍’이 분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때였다. 당시 안 전 대표는 지지율 50%가 넘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출마를 망설이던 그는 결국 박원순 변호사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박 변호사는 서울시장에 올랐다.

이듬해 제18대 대선부터 안 전 대표는 대선주자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12년 9월19일 안 전 대표는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안 전 대표는 박 전 대통령과의 가상 양자대결서 박 전 대통령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대선주자였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과정서 여러 가지 마찰을 빚으면서 2012년 11월23일에 돌연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듬해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서 60.5%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안 전 대표는 본격적으로 ‘자기 정치’를 시작했다.

안철수, 사업가서 정치인으로
유승민, 좋은 집안서 잘 자라


이후 친문(친 문재인)패권주의에 반기를 들고 나온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창당 직후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서 의석 38을 가져오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대선 풍향계’로 통하는 호남을 석권했다. 현재 안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때만큼의 지지율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안 전 대표가 주장하는 대로 결국 ‘문재인-안철수’ 양자대결 구도로 흐른다면 이번 대선은 예측불허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YS의 권유로

경남 창녕서 태어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대구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울산에 내려가 일당 800원짜리 현대조선소 경비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보고 세상을 바꿀 결심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훗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청주지검을 시작으로 부산지검, 광주지검, 서울지검서 검사로 재직한 홍 지사는 1988년 전두환 측근 비리를 척결했다. 1991년 광주지검 강력부 강력계 검사로 부임하고 나서부터는 조폭들의 저승사자가 됐다.

홍 지사는 지난 2013년 2월 그가 술을 끊게 된 계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1991년 3월부터 여자가 있는 술집은 안 간다”며 “그 당시 광주엔 룸살롱을 거의 건달들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검사가 그런 곳 가서 술 마시고 무절제한 행동을 하면 건달들에게 약점을 잡힌다”고 말했다.

그가 검사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 사건은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이다. 그는 ‘6공의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등 권력 실세들을 구속 기소해 명성을 얻었다. 이 사건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됐고, 그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1995년 10월 정계 진출을 시사하면서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가 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도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해 제15대 총선서 금배지를 달았다. 이후 선거법 위반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잃었지만 재보궐 선거를 통해 1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승승장구한 그는 17·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2012년 11월27일 대선 후보로 출마한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후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권영길 후보를 누르고 경남도지사에 당선됐고, 2014년 지방 선거에도 이겨 연임에 성공했다.

도지사로 활동하던 중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지면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재판이 열린 지난달 16일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곧바로 홍 지사는 자유한국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출마로 인한 반사이익도 얻었다. 현재 홍 지사는 보수진영 단일화에 나서면서 대권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승민]
이회창과 인연

1958년 대구서 출생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초·중·고등학교를 대구서 마쳤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한 유 의원은 위스콘신대학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수석연구위원으로 12년간 일했다.

한국개발연구원서 연구위원 시절 당시 연구원이었던 바른정당 이혜훈 의원과의 인연은 익히 알려졌다. 현재도 두 사람은 정치적 행보를 같이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에 있던 유 의원을 정계로 끌어들인 사람은 2000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였다.

이에 유 의원은 “정치권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법조계 출신 정치인이었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통해서였다”며 “이를 계기로 마흔두 살이던 2000년 2월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캠프에서 정책개발, 메시지 담당, 연설 담당을 맡았다. 그때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이번 대선서 유 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이 전 총재의 낙선 이후 유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고, 17대 총선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2005년 1월 박근혜 당 대표 비서실장직을 맡았고 같은 해 10월 비례대표직을 던지고 대구 동구을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지역구 의원으로 거듭났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서 박근혜 후보의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저격수로 활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 의원을 대선주자급 정치인으로 만든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근혜정부서 유 의원은 친박서 배제됐다. 지난 2015년 2월 원내대표에 선출된 유 의원은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이후 친박 공천 학살 과정서 유 의원은 탈당, 무소속으로 대구에 출마해 전국구 정치인이 됐다. 특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서 유 의원은 전면에 나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면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탄핵 이후 지지율 정체 국면은 유 의원이 대선 승리를 위해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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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