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바라는 박근혜 구속 시나리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6.11.29 08:37:36
  • 호수 1090호
  • 댓글 0개

“검찰, 맘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가능”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구속’이 광화문 광장서 울려 퍼졌다. 지난 다섯 차례 촛불집회 현장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백만명이 운집, 박 대통령에 대한 철저 수사를 촉구했다. 4%대로 추락한 국정운영 지지율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을 한 몸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대변하는 수치다. 성난 민심은 진실규명에 있어 성역은 있을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박근혜 구속’은 점점 현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검찰 앞에 서는 상황은 부담스러웠나 보다. 지난 4일, 2차 대국민 사과를 통해 “검찰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이하 특검)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박 대통령은, 그러나 ‘진박’ 유영하 변호사를 선임한 후 돌연 태도를 바꿨다.

최근 유 변호사는 검찰 대면 조사 시점을 연기(지난 15일)하는가 하면 “앞으로 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 요청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상태다.

피의자 박근혜
역대급 태세전환

이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이하 특수본)서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 표시였다. 앞서 특수본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안종범·정호성 간에 공모관계가 인정된다며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했다. 발표를 접한 유 변호사와 청와대는 ‘논리 비약’ ‘사상누각’이라는 단어를 쓰며 격분했다.

반면 검찰 측은 박 대통령 혐의 입증을 확신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최씨를 다방면으로 챙겨주려 측근들에게 지시한 내용들이 안종범의 수첩, 정호성의 휴대전화 녹취파일에 빼곡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녹취파일을 10초만 공개해도 촛불이 횃불이 될 것”이라고 밝힌 검찰 측 입장은 그들의 자신감을 잘 보여준다.

때문에 칼자루는 검찰 및 특수본이 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수본은 유 변호사를 통해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오는 29일까지 진행해야 한다고 요청한 상태다.

법조계에선 이번에도 대면조사에 불응할 시 검찰이 소위 ‘창고 대방출’에 나설 수 있다고 예상한다. 특검으로 넘어가기 전 검찰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고, 시간 끌기로 애먹였던 유 변호사를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카드로 읽힌다.
 

정치권은 검찰로부터 공이 넘어올 시점을 한껏 벼르며, 일명 ‘쓰리 트랙’ 전략을 준비 중이다. ‘탄핵’ ‘특검’ ‘국정조사(이하 국조)’ 등이 그것이다. 박 대통령 퇴진을 위한 탄핵, 퇴진 후 사후처리까지 고려한 특검·국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위함이다. 매머드급 진상조사팀이 박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는 모습이다.

앞서 유 변호사는 특검을 ‘중립적’이라 표현했다(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유 변호사의 발언에 대해 “언제부터 야당을 중립적이라고 믿었느냐”며 일침을 가했다). 그 ‘중립적 특검’은 곧 실체를 드러낼 예정이다.

지난 17일, 진통 끝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검 임명법’(이하 특검법)은 곧바로 국회 본회의로 넘겨져 가결됐다(재석의원 220명 중 찬성 196명, 반대 10명, 기권 14명).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은 지난 18일 정부로 이송됐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주재한 국무회의서 통과됐다.

이에 과연 누구를 특검으로 앉힐지 여부만 남았다. 특검법에는 더불어민주당 및 국민의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자 2명 중 1명을 박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보다 입맛에 맞는 특검을 결정하기 위해 탄핵 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통과되기 전인 11월 내 후보자 임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수사 몸통
퇴진에 조준

국조의 경우 과연 누가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할지가 관심사다. 최근 국조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서 여야는 증인 조율에 성공했다.

국조 증인에는 최씨와 차은택, 고영태 등 측근을 비롯해 김기춘(전 비서실장)·우병우(전 민정수석)·안종범(전 정책조정수석)·조원동(전 경제수석)·정호성(전 부속비서관)·이재만(전 총무비서관)·안봉근(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청와대 인사가 포함됐다.

또 이성한(전 미르재단 사무총장)·허창수(전경련 회장)·이승철(전경련 상근 부회장) 등 관련자, 박 대통령과 면담한 국내 대기업 총수 9명, 최씨의 딸 정유라와 조카 장시호, 언니 최순득까지 줄줄이 소환이 확정됐다.

다만 최대 관심사인 박 대통령 증인 채택은 물 건너갈 공산이 커졌다. 야당 의원들은 “성역은 있을 수 없다”며 박 대통령 증인 채택을 요구했지만, 여당 의원들의 극렬한 반대에 무산될 위기다. 대통령 증인 채택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는 게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대면조사’ ‘국조 증인’ 등이 사실상 무산되자 체포, 구속 등 수사기관의 강제처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라는 신분상 특수성을 이용, 전면에 나서지 않는 모습에 국민들이 다시 한 번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치권 ‘쓰리트랙’ 전략으로 옥죈다
검찰조사 거부…특검 바라는 의도는?

그렇다면 실제 체포나 구속이 이뤄질 가능성은 어떨까. 이 또한 정치권처럼 학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현실적으로 박 대통령을 체포, 구속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측은 불소추 특권을 근거로 제시한다. 형사법을 연구하는 하태인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사라는 게 결국은 기소를 목적으로 한다. 대통령은 헌법상 보장하는 불소추 특권이 있기 때문에 기소를 못한다. 학계서도 기소가 불가능한 수사는 할 수 없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때문에 퇴임 후를 대비해 수사는 가능하다 할지라도 구속 수사까지는 어려울 것이다.”

“구속은 증거인멸, 도주의 우려가 있을 경우에 가능하다. 검찰서 인멸을 우려하는 증거는 박 대통령 본인이 가지고 있다기보다 최씨 등 주변인들에게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도주 우려 또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구속 사유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구속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다만, 박 대통령이 출석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심문을 위한 체포는 가능할 수 있다. 구속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는 특수본 측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수본 관계자는 최근 복수의 언론을 통해 “체포 영장은 구속 기소를 전제로 청구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 헌법에 명시돼있는데, 헌법을 초월해 적용될 수는 없다”고 체포 등을 전제로 한 강제수사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퇴임 후 구속
실현 가능성은?


반면 체포, 구속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측은 ‘증거인멸’에 방점을 둔다. 류석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법률대응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헌법상 대통령에 대한 불소추 특권이 있지만, 법리적으로 해석하면 대통령을 체포, 구속할 수 있다. 불소추 특권은 검사가 기소를 못한다는 뜻이지 수사를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체포, 구속은 수사 절차다. 때문에 검사가 의지만 있다면 체포, 구속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구속 요건으로 봐도 난 대통령의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금 청와대서 뭐 하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수사는 초동 수사가 매우 중요하다. 증거인멸이 끝난 후 수사를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때문에 기소는 못하더라도 증거인멸을 못하게 구속은 할 수 있다.”

법조계 내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 필요성이 확산되는 추세다.

인천지검 강력부 이환우(사법연수원 39기) 검사는 지난 23일, 검찰 내부 게시판 ‘이프로스’에 올린 글 ‘검찰은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를 통해 “범죄 혐의에 대한 99%의 소명이 있고, 이제 더 이상 참고인 신분이 아닌 피의자가 수차례에 걸친 출석 요구에도 불구하고 출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면, 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체포영장을 청구해 강제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우리의 법과 원칙”이라고 류 팀장과 같은 해석을 내놨다.
 

종합해 보면,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는 법리해석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체포는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구속과 달리 체포는 기소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또한 최근 “검찰은 출석 요구서를 발송하고, 불응 시 체포영장 신청도 고려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구속 요건 두고 학계선 이견
열쇠는 탄핵…내년 6월 결정

한편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 도주 가능성을 제기해 눈길을 끈다.

제57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는 광주지역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박 대통령은 사퇴 순간 구속이 될 것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자진사퇴는 없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본인으로서는 망명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 것이다. 일본계 페루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부패 스캔들이 일자 일본으로 도피해 팩스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탄핵이 박 대통령 구속 여부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를 통과한 탄핵 소추안이 헌재서 합헌으로 판결날 경우 박 대통령은 즉시 직위를 상실한다.

구속 영장 청구는 피의자의 직위, 직무와 관련 없지만 대통령이라는 가림막이 벗겨지는 순간 검찰이 특단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금처럼 민심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또한 특검에서 제3자 뇌물수수 혐의까지 추가한다면 박 대통령에 대한 체포, 구속 여론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핵심은 특권
탄핵되면 사라져

탄핵안은 빠르면 다음달 2일, 국회 본회의에 부쳐진다. 바야흐로 탄핵 정국이 목전까지 가까워진 셈이다. 최근 김무성 전 대표를 중심으로 여당 비주류까지 탄핵 여론에 동참하면서 탄핵안은 어렵지 않게 통과될 것으로 정치권은 예상 중이다. 그러나 실제 탄핵까지 갈 길은 아직 먼 상황이다.

익명의 한 야권 관계자는 탄핵안 판결은 빠르면 오는 6월경 결정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국민과 함께 하는 탄핵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서 “뇌물죄 기소를 못하고 직권남용·알선수재·강요 등으로만 기소된다면 헌재에서 (탄핵안이) 기각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찰총장 압박’ 박지원의 경고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정책회의에서 박 위원장은 “김수남 검찰총장이 나가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뜻이라면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또 하나 추가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김현웅 법무부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이 돌연 사의를 표명한 데 따른 것이다. 같은 당 장병완 의원은 “김 장관과 최 수석의 사의는 정부와 청와대의 분개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두 사람의 사의 표명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한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경고·압박용이라는 주장이다. 만약 김 총장까지 사의를 표한다면, 청와대가 검찰 조직에 보복한 것이라는 의혹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